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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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그래, 그들은 그냥 13이다

정윤섭 신부 (인천교구 이주ㆍ해양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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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대7.

 바람이 매섭게 불던 어느 날 오후. 가톨릭 해양사목의 상징인 스텔라마리스(StellaMaris) 마크를 단 승합차에 기념품을 싣고 인천내항으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낯선 모습 외국인들이 답동 언덕을 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항구에 정박한 선박 소속 외국인 선원들이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내게 성당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친절히 성당 위치를 가르쳐줬고, 그들의 배 이름을 물어 기록해뒀다.

 다음 날 아침 그 배를 찾았다. 그들은 한국인 선원들과 함께 일하는 한국회사 소속 필리핀 선원들이었다. 배 안으로 들어가니 식사 중이던 필리핀 선원들이 나를 보며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무척 당황하듯 일어나기에 왠지 모를 측은함이 들었다. 한국인 선원들과 잘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관계가 좋다"고 답했다. 그런데 뭔가 아쉬움이 남는 표정으로 말을 흐리는 것 같았다.

 먹을 것과 기념품 등을 건네주고 선원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하니, 한결 긴장을 푸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국인 선원들이 식당으로 들어온 후에는 필리핀 선원들과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그 배의 한국인 선원은 6명. 선장을 비롯한 기관사와 항해사들이다. 나머지 필리핀 선원 7명은 일반 노동자들이다. 한국과 필리핀 선원이 6대7인 셈이다. 교구 해양사목을 담당한 지 2년째. 배 안의 기강과 서열은 우리나라 군대문화에 버금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배에 올라보면 공동체 분위기가 바로 느껴진다.

 한 필리핀 선원이 나에게 초코파이와 음료를 줬다. 그야말로 정(情)이다. 나이도 있고 넉넉해 보이는 한국인 기관사와도 대화를 나눴다. 필리핀 선원들 역시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줬다. 6대7 중 필리핀인들을 위한 8이 돼줄 사람으로 보였다.

 한국인 선원들의 낯설어하는 눈길에 미소로 답하고 안전한 항해가 되길 기원하며 배를 빠져나왔다. 필리핀 선원들은 배 밖까지 나와 배웅해주며 몇 번이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들은 어제 자신들의 배에서 보이는 인천 답동성당 종탑을 보고 언덕을 오르던 중 나를 만났던 것이다. 기름때 묻은 손과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 그리고 긴장감이 묻어있는 그들의 미간이 돌아오는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그리고 6대7이 그저 나만의 지나친 염려였기를 바랐다. 그래, 그들은 그냥 1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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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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