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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삶이 담긴 선장의 굵은 팔뚝

정윤섭 신부 (인천교구 이주ㆍ해양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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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해양사목을 상징하는 `Stella Maris` 마크가 붙은 우리 차량을 알아보는 선원들이 요즘 꽤 많아졌다. 인천항에 정박한 `아시안 인피니티` 배 소속 외국인 선원들도 그랬다. 갑판 위 선원들은 지나가는 우리 차를 보고 손을 흔들었고, 나는 곧장 배 가까이 차를 붙였다.

 그 배는 며칠 전 정박 위치를 바꿔 또 다른 철제를 실어올리고 있었다. 그다지 큰 배가 아니어선지 배 안의 크레인이 철제를 옮겨 실을 때마다 배가 흔들렸다.

 반갑게 맞아주는 선원들 안내로 배 안의 식당에 들어갔다. 근엄하게 생긴 선장도 한창 식사 중이었다. 나는 그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선원들과 대화했다.

 한국인 선원들과 일했던 경험이 있다는 외국인 선원들은 한국말도 몇 마디씩 섞어가며 쉼 없이 말을 이었다. 나는 보통 배에 올라가 처음 만나는 선원들과 이야기할 때면 짧은 영어로 이야깃거리를 찾으려고 애쓴다. 상대와 눈을 맞춰가며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먼저 이야기를 건네는 선원을 만나면 고맙기 그지없다.

 이 배 문지기 선원은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던지, 나를 식구처럼 여기며 아무런 절차 없이 통과시켜줬다. 그래서 더욱 상쾌하게 느껴진 공동체(배)다. 하기야 근엄했던 선장도 내가 가톨릭 사제라고 하니 해맑은 어린아이의 얼굴로 반겼다. 사실 그 해맑게 변한 선장 얼굴이 나를 조금 무리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날 오후 선원들에게 줄 바나나와 라면, 초콜릿, 케이크 등을 차에 한가득 싣고 그 배를 다시 찾았다.

 47년간 바다를 누빈 선장은 나를 위해 직접 커피를 내왔다. 일류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예쁜 찻잔은 선장의 굵은 팔뚝과 대비됐다. 보통 배를 지휘하느라 바쁜 선장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긴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때는 선장과 이야기하느라 다른 선원들과는 오히려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대화의 시작은 선장의 예사롭지 않은 굵은 팔뚝이었다. 매일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선장은 가족 이야기부터 시작해 학창시절 이야기, 드넓은 세상을 다닌 이야기를 모두 풀어놓았다. 오래 전 인천에 입항했던 이야기도 늘어놨다.

 이야기 내내 쉼 없이 움직이는 그의 팔뚝이 눈에 들어왔다. 선장의 팔뚝은 마치 47년간의 바다 인생을 담고 있는듯했다. 온 세상 넓은 바다의 서로 다른 냄새를 간직하고, 수없이 많은 닻을 올리고 내렸던 땀을 품고 있었다. 많은 선원이 그 팔에 매달려 대양을 건넜을 것이다. 여전히 바다 위 삶을 즐기고 있는 선장의 해맑은 모습은 어느 바다, 어느 항구에서나 이어질 것이다.

 `해맑은` 그의 공동체는 내일 큰 바다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고 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보니 `아시안 인피니티`의 녹슬고 투박해 보이는 큰 굴뚝이 선장의 굵은 팔뚝과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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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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