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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칭기즈칸의 후예들

정윤섭 신부 (인천교구 이주ㆍ해양사목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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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첫 해외 여행지는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사는 몽골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양과 말, 파란 하늘. 그리고 언어는 다르지만,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몽골인들.

 10여 년 전 선교사로 활동하는 한 신부를 응원하고 도움을 주고자 그곳에 갔었다. 그때 나는 몽골의 도심과 외곽지역을 두루 다녔다. 비록 말이 아닌 자동차로 다녔지만, 초원을 가로지르고 언덕을 넘어 외딴 목장에 다다라 며칠을 묵었다.

 몽골 하면 그들의 이동식 텐트인 `게르`가 유명하다. 그때 그곳에서 아주 잠깐 유목민 생활을 체험했다. 그런데 말이 체험이지 수도와 전기,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의 생활은 불편함 투성이었다. 화장실은 더욱 그랬다.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작은 울타리를 쳐놓고 땅을 얕게 파놓은 곳은 있었지만, 그냥 텐트 뒤쪽이 화장실이었다. 그들에겐 먹는 것만큼 배출(?)하는 게 일상인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큰 나무도 바위도 없는 드넓은 초원에서 가릴 곳을 찾아 산을 넘고 지평선을 건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그곳에서 만났던 꼬마 녀석들은 남들 눈을 피해 멀리서 볼일을 봐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저 조금 떨어져 이쪽을 보며 배시시 웃으며 바지를 내리곤 했다. 멋쩍어 눈을 돌리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주 인천교구 이주사목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어린이집 `품 놀이터`에 갔다. 추운 겨울, 그곳에서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품 놀이터가 이사한 지는 며칠 되지 않았지만, 선생님과 수녀님, 그리고 봉사자들의 정성스런 손길 덕분에 이미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과거 나환우촌으로 불렸던 그 동네는 현재 소규모 공장들이 들어선 공단지역으로 변했다. 그 안에 따뜻한 품 놀이터를 새로 장만한 것이다.

 품 놀이터는 외국인 노동자 부부가 일하는 낮에 부모 역할을 대신해주는 곳이다. 그러다 부모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이도 할 수 없이 보내진다.

 현재 이곳 몽골인들은 유목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찾아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다. 그날 나는 아이 오치랄, 항갈, 빌꿍에란 이름의 몽골 아이들을 위한 일일 아빠가 돼줬다. 이들은 넘어지고 엉금엉금 기고 일어서고 소리도 질렀다.

 장난감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며 한참을 함께 노는데 뭔가 이상한 냄새가 느껴졌다. `공장지대라 공기가 좋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말을 태웠다. 그렇게 놀고 있자니 한 녀석의 엉덩이 부분이 밤송이만큼 젖어오는 게 아닌가?

 `이크, 이놈 실례를 해놓고도 웃으며 놀고 있다니.` 능청스러움이 지나친 것인지 먹는 것이나 싸는 것이나 모두 삶의 한 부분임을 통달한 것인지. 확인차 살짝 바지를 내려보니 커다란 몽고반점이 웃고 있었다. 마치 10여 년 전 텐트 앞에서 똥을 싸며 웃던 그 꼬마의 얼굴처럼. 얘들아, 너희도 튼튼히 자라서 푸른 초원에서 힘차게 말 달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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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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