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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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51>십계명 :다섯째 계명 "사람을 죽이지 마라"(상)

세월호 선장 행위, 명백한 간접 살인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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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다섯째 계명은 인간 생명의 신성함과 존엄함을 일깨운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생명 수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젊은이들. [CNS 자료사진]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이야기합니다. 인간 생명이 신성한 것은 그 시초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이며, 또한 창조주 하느님과 영원히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만이 인간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무죄한 인간의 목숨을 직접 해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다섯째 계명에 대해 알아봅니다.



▨인간 생명의 존중(2259~2283항).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탈출 23,7). 이 법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또 주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살인하는 일뿐 아니라 분노와 증오, 복수하는 일까지 금지하시며,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고의적 살인 : 다섯째 계명은 “고의적이고 직접적인 살인을 중대한 죄”로 금하면서 “살인자와 살인에 일부러 협력하는 자는 하늘을 향해 복수를 부르짖게 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여깁니다(2268항). 유아 살해, 형제 살해, 부모 살해, 배우자 살해는 하늘이 부여해준 유대를 파괴하는 것이기에 특별히 중한 죄입니다. 또 우생학이나 국민 건강을 구실로 행해지는 어떤 살인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 계명은 또한 어떤 사람을 간접적으로라도 죽이려는 의향으로 자행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합니다. 중대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을 죽을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 위험에 놓인 사람에게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다섯째 계명을 어기는 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굶주림으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데 구제책을 세우고자 노력하지 않고 묵인하는 것은 파렴치한 불의이며 중대한 죄입니다. 또 폭리를 추구하며 탐욕스러운 행위로 인류 형제의 굶주림과 죽음을 유발하는 상인들은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다만 본의 아닌 살인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적합한 이유 없이 죽음을 초래하는 행동을 했다면, 비록 살해 의도는 없었다 하더라도 중죄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정당방위 : 정당방위 곧 자기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공격하는 자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해 죽게 만든다면 살인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폭력을 사용한다면, 부당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방어를 위해 적절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을 물리친다면 그것은 정당합니다. 정당방위는 권리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책임진 사람에게는 중대한 임무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선을 지키려면 불의한 공격자가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해야”(2265항) 합니다.

형벌의 목적 : 여기서 공권력이 가하는 형벌의 목적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권력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형벌을 부과할 권리뿐 아니라 의무를 지닙니다. 형벌의 첫째 목적은 잘못으로 발생한 폐해를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러나 공공질서와 사람들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형벌은 또한 치유를 위한 것으로서, 되도록 죄지은 사람의 교정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사형 : 사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범죄자의 정체와 책임 규명이 완전히 이뤄지고 또 불의한 공격자에게서 인간 생명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유일하고 가능한 방법이 오로지 사형뿐이라면, 사형에 의존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공격자에게서 사람들의 안전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데 사형이 아닌 방법으로도 충분하다면, 공권력은 그러한 방법만을 써야 한다”(2267항). 이것이 공동선의 실제 조건에 더 잘 맞으며, 또 인간 품위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낙태 : 인간 생명은 임신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받고 보호돼야 합니다. 이미 초세기부터 교회는 인위적 낙태를 도덕적 악으로 단정했습니다. 직접적인 낙태뿐 아니라 “낙태에 대한 분명한 협력”도 중죄가 됩니다. 낙태하는 이뿐 아니라 낙태를 주선해서 그 효과를 얻는 자도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습니다. 이것은 낙태죄가 그만큼 심각하고 중대한 죄임을 일깨웁니다.

배아 : 배아 역시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완전하게 보호받고 보살핌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산전 진단, 즉 배아에 대한 진단은 “배아의 생명과 온전성을 지키고 배아를 하나의 개체로서 보호하거나 치료할 목적으로 행해진다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유산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산전 진단을 한다면 중죄가 됩니다. 또 연구 재료로 쓰려고 배아를 만들어 내는 일은 부도덕합니다. 배아의 염색체나 유전 형질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조작은 치료 목적이 아니기에 역시 부도덕합니다.

안락사 : 동기나 수단이 어떠하든 간에, 직접적인 안락사는 신체 장애인이나 병자 또는 임종을 눈앞에 둔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이고, 이런 안락사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용이 크게 들고 위험하며 특수하거나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의료기구의 사용 중단은 정당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는 환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고 막을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여겨진다더라도, 환자에게 일반적으로 베풀어야 하는 치료 행위를 중단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자살 : 생명의 최고 주권자는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의 관리자이지 소유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생명을 우리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습니다. 자살은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존속시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과도 상반되며, 올바른 자기 사랑에도 크게 어긋나는 것입니다. 자살은 가정과 국가, 인류 사회와 맺는 연대 관계를 부당하게 파괴합니다. 그래서 자살은 중대한 죄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단정하거나 그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해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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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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