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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39) 순교자를 닮은 신부님 ②

‘있는 그대로’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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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 우리가 탄 대형 버스는 완전히 갇혀버렸고, 할 수 없이 나는 내려서 대형 버스의 주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순교 사적지로 달렸습니다.

200m쯤 갔더니 소박한 시골집 같은 곳 몇 채 사이에 작은 마당이 있었고, 때마침 수녀님은 그곳 순교 사적지 전담 신부님과 함께 나무 그늘에서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연세가 지긋하신 전담 신부님은 나보다 더 놀란 목소리로 “아이고, 그래요! 지금 차는 어디에 있어요?”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골목에 갇혀 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신부님은 직접 “차 있는 곳으로 같이 가자”고 하셨습니다.

‘아! 다행이다.’

우리는 차 있는 곳으로 함께 갔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편안한 미소로 운전기사 선생님에게 “이렇게 저렇게 운전을 하라”고 알려주신 다음, 골목에서 차를 천천히 뒤로 빼셨습니다. 아슬아슬 차를 뺀 다음, 대형 버스로 올라타신 후 우리에게 하신 첫 말씀이, “고생하셨습니다. 요즘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 마을 입구에 이정표를 크게 해 놓았는데 그것을 못 보고 지나치는 것 같아요. 얼마나 걱정하고 놀라셨어요? 이제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갑시다. 제가 안내를 해 드릴게요!”

그렇게 신부님은 우리를 주차장으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고, 우리 일행을 나무 그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시더니 열정적인 모습으로 순교 사적지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약해 놓은 미사 시간이 되자 함께 미사를 집전해 주셨고, 특히 미사 중 강론을 통해 순교의 삶을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을 때에도 손수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신자들 한 분 한 분에게 계속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순례를 마치고 떠날 때에도 끝까지 우리와 함께 자리를 같이 해 주시면서, “오늘 만난 순교자의 삶을 일상 안에서도 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당부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모두가 다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행 중에 한 분이

“신부님, 저 신부님은 혼자 순교지 조성하느라 물질적인 것이 많이 필요하고, 누구보다 더 십 원 한 푼이 아쉬울 텐데, 우리를 위해 그렇게 수고하셨으면서도 ‘후원회 가입해라’, ‘성지 좀 도와 달라’ 등의 말씀 한 번 안 하시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대해 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사실 그랬습니다. 어떤 순교 사적지는 말 그대로 순교자를 앞세워 사업을 하는 장소 같았고, 또 어떤 순교 사적지는 순례객들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산만하기만 했고, 또 어떤 순교 사적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또 어떤 곳은 순교자 혹은 증거자의 흔적이 그대로 베여 있어 많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그곳 순교 사적지 역시, 전담 신부님이 당신 삶으로 손수 그 순교자의 삶과 마음을 닮고자 해서 그런지, 아무 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그곳, 그저 옛날 다 허물어진 공소를 그대로 복원만 해 놓았는데, 그곳에서는 다른 그 어떤 곳보다 더 순교자의 삶과 체취,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통해 마음으로 너무도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순교 영성은 순교자 한 분 한 분을 있는 그대로 닮고자 하는 순박하고 단순한 여정인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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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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