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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42) 하느님의 품 ②

수사님 성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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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미사 복사 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랬습니다. 그러자 그 수사님 어머니는,

“강 신부님! 아들이 새벽에 성당에 가면 쌀을 씻어 밥통에 넣고, 국이랑 몇 가지 반찬을 만든 후, 성모님 앞에 앉아 촛불을 켠 후, 묵주기도 5단을 바쳐요. 그러면 아들은 성당에서 돌아오고, 그러면 가족들은 한명씩 일어나 씻고, 아침 식사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지요. 그런데 그 날의 기억은 너무나 생생했어요. 그해 겨울, 영하 16도로 내려가던 날, 미사 복사 간 아들이 3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에 시계를 봤죠. 그런데 아뿔싸! 더 깜짝 놀란 것은 시간이 새벽 5시였던 거예요. 알고 보니 제가 새벽 2시에 아들을 깨워 성당을 보냈던 거예요. 다급한 마음에 성당 복사 담당 수녀님에게 전화를 했고, 그 전화를 받은 수녀님도 놀라 이불을 들고 성당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으로 뛰어 갔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그 추운 날, 성당 대문 앞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었던 거예요. 하마터면 성당 앞에서 얼어 죽을 뻔했답니다. 저도 남편이랑 성당으로 달려가서 잠든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고, 이내 곧 따스한 방에 눕혔더니, 그 날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거예요. 그때가 방학이어서 천만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저녁에 깨어난 아들은 그 날의 기억은 없는 듯 했지만, 뭔가를 체험했는지, 그다음부터 더 열심히 새벽 미사 복사를 갔어요. 그러다가 결국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지금 그렇게 잘사는 것 같아요.”

그 수사님 성소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2시에 성당에 갔다가 거의 3시간 동안 성당 문 앞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잠이 든 수사님.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던 수사님에게 따스한 온기를 준 분은 하느님이 아니라 수녀님의 이불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수사님은 그 날의 기억은 없고, 느낌으로 하느님이 자신을 따스하게 품어주어 살려주셨다는 기억만 남아 있었습니다. 수사님은 가끔 대화 중에 가난하고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짐의 근원이 어쩌면 바로 그 날, 하느님의 따스한 품의 흔적 같았습니다.

비록 수사님 어머니의 실수로 빚어진 일이지만, 그 실수가 결국 하느님의 따스한 품속을 체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수사님의 체험을 들으면서, 하느님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르심의 길로 인도하시고, 그 체험의 방식대로 하느님은 그들을 당신 구원 사업에 쓰신다는 것을 확신케 되었습니다. 또한 수사님 어머니를 통해 듣게된 그 이야기는 정말 아름다운 비밀로 간직해 주고 싶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 내 방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수사님 이야기에 의하면 그 날 성당 문 앞에서 잠이 들려고 하면,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성당 문이 열릴 거야’라고 말해주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누구지! 그럼 혹시, 진짜로 그분이…….!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실제로 수사님에게 나타나서, 계속 졸지 않도록 말을 걸었던 분이 그 분이 맞는다면! 이 일의 의문은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에 가서야 풀리는 수수께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그 수사님이 수도원 미사 때 복사를 서는 모습을 보면 혼자서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정말 그 날 성당 대문 앞에 나타났던 것일까!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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