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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44) 동료 사제의 이름

선배 사제의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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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서품 동창 신부 몇 명이랑 무척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화기애애와 화기애매함이 곁들여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이야기하였습니다. 해외 선교사로, 본당 주임 신부로, 어느 분야 연구자로, 특수 사목을 하는 사제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저녁 식사를 하러 조촐한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는데 다른 식탁에 계신 손님 중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분이 우리 자리로 왔습니다. 순간 동창 신부님이 일어나더니, ‘형님, 형님’ 하면서 그분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같은 교구 선배 신부님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우리보다 앞서 본당 신자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우리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수도회 신부님이로구나’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소개를 드렸더니, 어깨를 툭- 쳐주셨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선배 신부님과 함께 자리에 앉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우리 동창 신부들의 이름뿐 아니라, 그 교구의 모든 신부님 이름을 다 외우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작년에 서품받은 그 교구 신부님의 이름까지 말입니다. 꽤 많은 숫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신부님의 말씀 중에 끼어 물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교구의 모든 신부님 이름을 다 외우세요? 얼굴도 다 아시고요?”

그러자 신부님은 별 싱거운 질문을 다 한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더니,

“아니,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의 이름을 다 아는 것은 기본 아닌가요? 얼굴도 마찬가지고! 나는 해마다 교구 서품 초대장이 오면 내 서재 맨 중앙에 크게 붙여놓아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얼굴과 함께 보며 익히지요. 그게 선배로서 할 일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사제 공동체다, 우리는 형제다 말로는 그렇게 하면서, 실제로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사기를 치는 거지요. 나는 특히 교구 사제의 부모님 장례가 나면 무조건 참석해요. 내 동료의 부모는 내 부모니까! 그런데 가끔 까마득한 후배 신부 부모님 장례 미사에 갔더니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 신부를 어떻게 알고 왔냐고!’ 그래서 내가 화를 낸 적이 있어요. 아니, 그 신부를 개인적으로 알아야만 장례 미사에 오느냐고. 우리는 같은 공동체 교구 소속 형제니까 당연히 동료의 부모 장례는 내 부모 장례 같아서 오는 거라고.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고.”

소속된 공동체 안에서 백 명, 이백 명도 아닌 몇 백 명의 동료들 이름을 다 외우는 것 자체가 ‘쉽다, 어렵다’라고만 단정할 것이 아닙니다. 내가 공동체 소속 동료의 이름을 외워야 할 이유와 가치가 있다면 정말 기쁘게 그 이름을 외울 것이고, 동료의 이름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면 외우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과연 동료라는 개념에 대해서 묻게 됩니다. 동료의 의미가 그저 목적으로 만난 단체 안에서의 동료냐, 아니면 함께 같은 길을 걷는 소중한 형제로서의 동료냐 거기에 따라서 관계와 관심이 결정 나는 것 같습니다. 몇 백 명의 동료 이름을 다 외우는 그 마음, 그 선배 신부님에게는 같은 길을 걷는 수 백명의 동료가 정말 소중한가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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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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