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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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 땅과 하늘, 똑같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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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주일, 사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합니다. 그동안 제 삶을 채웠던 교만과 허세와 자만을 꺼내어 보여드립니다. 내면의 상처를 감추지 않고 진득이 묻어있는 모든 불순물을 주님께 깡그리 봉헌합니다.

지금 저는 현대의학이 해석하지 못하는 매우 독특하며 알쏭달쏭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처음 수술을 받고,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주님께로 더욱 의탁하며 감사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 생각과 다른, 예상치 못한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몸을 혹사했던 많은 날과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제 몸의 온갖 장기와 세포들이 힘들게 힘들게, 저를 지탱시켜주기 위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티어줬다는 걸 느꼈습니다.

스스로 힘을 자신했던, 자신의 건강을 뽐냈던 갖은 행위들이야말로 스스로의 약함을 숨기려는 오만, 주님께서 주신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마구 부려댄 교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 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사제의 체면보다 사제의 권위보다 훨씬 무거운 인간의 무지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참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열했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이 미련함에 오래 울었습니다. 아직 병명조차 아리송한 병과의 싸움이 진행 중이지만 매일 몸에게 사과를 건네며 지냅니다. ‘미안타’, ‘애썼다’라고 용서를 청합니다. 아니, 몸을 선물해주신 주님께 사죄드리며 몸을 아끼고 사랑하겠다 다짐합니다.

무릇 삶은 완만하게 흐르지 않습니다. 삶에는 모든 것을 뒤엎는 소용돌이가 존재합니다. 그 요란한 소용돌이 앞에 이르러서야 인간은 권태롭고 단순하여, 시시하게 느껴지는 그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비로소 실감하게 됩니다. 바로 지금, 제 모습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때문에 늘 다른 삶을 꿈꾸고 추구하려 합니다. 지금보다 나은, 현재보다 우월한 자신의 모습을 위해서 지금을 낭비합니다. 제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성녀 카타리나는 “시간을 기다리지 마세요. 시간은 당신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도 지금, 즉시 실천해야 하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용서해야 하는 절호의 기회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열심한 신앙생활을 성경 공부나 신학을 알아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을 봅니다. 물론 틀리지 않고 그릇된 생각도 아닙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온통 자신의 것을 비우고 주님의 것으로 채우는 작업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지식’에 불과합니다. 거룩한 삶과는 동떨어져, 허무를 향할 위험이 큽니다. 더해서 거룩한 하느님의 것을 이용하고 소유하려는 유혹에 걸려들 소지도 다분합니다. 심지어 신앙과 기도조차도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도구로 오용할 위험이 따릅니다. 지금 제 몸은 깊이 앓으며 우리 영혼이 세상의 어떤 좋은 것으로도 결코 채울 수 없으며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오직 거룩한 하느님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진리를 몸부림치며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스스로의 한계에 주저앉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비록 약하고 모자랄지언정, 주님 안에 머물며 당신의 평화를 누리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 그림자에 영혼이 젖어, 자기만족과 자기성취와 자신의 영예를 위해서 쉼 없이 달리고 또 달립니다. 마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주님을 향한 최선인 양, 힘을 소진하는 것이 주님의 기쁨인 줄 오해합니다.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때로 으스댑니다. 이 죄인이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정열적으로 주님의 뜻을 살아낸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은 그분께 거룩한 것이었고, 아버지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의 삶에는 지루함도 분주함도 없었고 신경과민도 없었습니다. 자기과시를 위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고 자화자찬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을 값지게 살았습니다. 온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삶에서 본받아야 할 모범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오늘 복음으로 선포되는 말씀, 즉 사랑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나누는 것에도 모두 때가 있다는 진리를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이제서야 그분의 멋진 성심을 본받아서 그분의 복음을 살아낼 꿈을 꾸고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크신 그분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그분을 알리기 위해서만 제가 가진 힘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내 꿈이 아니라 주님의 꿈을 이루어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야 겨우….

설사 누군가에게 “기름을 나누어다오”라는 어이없는 청을 듣더라도 “모자랄 터이니 차라리 상인들에게 가서 사라”라고 차갑게 대하지 않는 찐 사랑을 살게 되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용당할 줄 알면서도 아낌없이 내어주시던 예수님처럼,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을지라도 맞서지 않는 아량을 지녀 살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바보 같은 삶이야말로 복음을 제대로 온전히 살아내는 단 하나의 방법이기에, 딴 길로 들어서지 않으려 합니다.

하여 하루가 저무는 저녁,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가슴을 치며 불순종의 허물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더 자주 그분을 닮으려 애쓴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쫓아, 성인들을 본받아 믿음과 사랑을 살아보니, 정말 좋고 너무 기뻤다는 고백을 올리게 되기를 원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의 은총에 매료되시어, 이 땅에서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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