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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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 하느님 앞에 우리의 탈렌트를 내어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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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탈렌트가 있습니다

신부의 외모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잘생기면 사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신부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요. 보좌신부 시절에 어떤 본당으로 인사이동을 했더니, 그 본당 청년들과 학생들이 엄청 많았답니다. 그래서 ‘이 본당은 학생들이 참 많은 본당이구나’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전임 보좌신부님이 굉장히 잘생긴 분이셔서 성당에 나오는 학생 수가 많아졌답니다. 비신자 학생들까지 신부님을 보러 성당에 나올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관심 있어 하는 학생들에게 그 신부님의 이야기는 다른 신부님의 이야기보다 더 잘 들릴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어땠을까요? 외모 덕을 좀 봤을까요? 아마 예상하시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아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을 때 안드레아가 하는 말이 저에게도 해당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소용없는 것이 아니었죠. 예수님은 그 보잘것없는 양식을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마찬가지로 제 외모도 매력적이거나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쓰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언제냐면 시골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제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시골틱하다, 불쌍하다’고들 하는데요. 그 느낌이 도시에서는 별로 쓸 데가 없지만, 시골 본당에서는 아주 유용했습니다.

공소를 짓기 위해 모금하러 다니면서 외모가 쓰임이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예전에 신학생 때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는데 그중에 ‘불쌍한 신학생’이라는 별명을 교수 신부님이 지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수업에 들어오시면 종종 저를 찾곤 하셨는데, 그 신부님이 동기들에게 농담 삼아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 기현이한테 잘해. 나중에 기현이가 본당 나가면 신자들이 불쌍하게 생겼다고 선물 많이 해 줄 텐데, 그거 하나라도 나눠 받으려면 미리 잘하라고. 또 만약에 본당에 모금할 일이 생기면 기현이 얼굴만 보여줘 그럼 헌금이 쏟아질 테니.”

일부러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제 외모가 도움을 바라는 느낌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덕에 -물론 신자들도 함께 노력해서이지만- 공소를 빚 없이 잘 지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예수님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그 보잘것없는 것들로 더 큰 일을 하십니다. 내 탈렌트를 묻어두기보다, 무엇이든지 간에 그분 앞에 내어놓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시작이 중요합니다

중국에 있을 때 한 자매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한다. 나이가 많다. 외국어가 어렵다는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에 한 단어, 한 문장씩만 공부했어도 많이 나아졌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럼 저는 어땠을까요? 저도 1년 동안 말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거의 매일 ‘하고 싶은 말’을 작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문하고 선생님께 수정받고, 녹음해 달라고 해서 듣고, 실전에서 써 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할 줄 아는 말이 조금 있습니다. 그리고 1~2년 지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조금 더 늘었습니다.

물론 듣고 작문하는 수준이 높지도 않고 발음도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의 범위가 해가 지날수록 조금씩 늘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열매가 혼자 다른 지역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방문하고, 현지 성당에서 강론하고 미사 봉헌하는 일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너머 자라고 성장하여 열매 맺는 일들을 보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성실함입니다

학부 3학년으로 복학하기 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온 이후, 외국어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열정이 생겼는데, 마침 본당에 메리놀 외방 전교회의 신부님이 보좌신부님으로 계셨습니다. 그래서 신부님께 영어 공부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아침식사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7시에 사제관에 갔습니다. 주로 제가 적어 온 영어 일기를 말하고 신부님이 고쳐 주시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영어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영작하는 것이나 읽는 연습을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그때는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할 때였습니다.
몇 주는 신부님과의 아침 영어 공부가 잘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한두 주 날짜가 지날수록 한두 번 빠지기 시작했고, 한 달이 넘어갔을 때는 한 주간을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겨우겨우 아침에 나갔는데, 그날도 신부님은 밖에 있는 신문을 가지러 나와 계셨습니다. 신부님은 화를 내거나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 영어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끈기를 가지고 성실하게 하는 모습이에요.”

신부님의 그 말씀이 아직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의식 중에 무언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끈기와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성실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우리의 성실함입니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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