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생명/생활/문화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나의 독후감] 「교부들의 길」을 읽고

교부들 말씀 하나 하나가 신앙의 길잡이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가톨릭신문에 교부들에 대한 얘기가 연재된 적이 있었다.

난 ‘나와는 동떨어진 그리고 난해한 이야기야’ 라면서 애써 피하기만 했지 읽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름부터가 생소했었고 교부들의 얘기는 나의 신앙생활엔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야 그것이 바로 나의 어리석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교부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가톨릭교회는 존재나 했을까 의문을 가질 정도로 그들은 온몸을 던져 호교했고, 양떼를 돌보았으며,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논쟁과 설교를 쏟아냈고, 황제와의 갈등에서는 수많은 교부들이 목숨을 내놓았다.

‘교부들이란 원천을 탐구하지 않고서는 교회생활의 쇄신과 심화란 있을 수 없고, 오늘날의 교회는 교부들을 연구함으로써 쇄신된다’는 말엔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와 함께 생각난 것이 며칠 전 가톨릭신문에 (11월 3일자) 교황님께서 ‘사치’주교님에게 정직 처분을 내리셨다는 기사였다. 호화로운 주교관과 교구청 건축공사로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라 했다.

포시다우스의 ‘아우구스티누스’ 생애에 대한 글 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분은 새로운 건축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셨다. 그런 일에 휘말려 정신을 빼앗기기 보다는 당신 마음이 세상 온갖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셨다 … (중략) …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성물마저 쪼개고 녹이게 하셔서 궁핍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유명한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치 주교님도 이 내용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더욱 안타까웠다.

난 ‘교부들의 길’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할 수 있었다. ‘교부’란 누구인가?

교부는 “시기적으로 고대에, 정통신앙의 노선에서, 교회가 인정하는 뛰어난 가르침을 펼쳤을 뿐 아니라, 그 삶의 거룩함도 증언되는 분이라는 조건을 채우는 분”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교부들은 그 시대가 낳은 가장 위대한 주교나 평신도였다. 그들은 또 많은 책을 저술했다. 당시의 책들은 영적체험의 산물이고, 양떼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여 바로잡기 위해서 쓴 책들이었다.

교부들의 호교, 연설, 저술, 못지않게 우리 그리스도교를 강하게 묶은 것은 교부들의 순교로 흘린 피가 아닐까 내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교부들은 ‘당신을 섬기는 일보다 더 큰 보상은 없다’ 하셨기에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 놓으셨다.

교부들의 믿음과 열정은 너무나 허약한 신앙밖에 가지지 못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교부들의 신앙을 닮으려고 노력한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 중간 중간 마음에 새긴 각오도 실천해야겠다. 그리고 성경을 멀리하지 않고 읽어야겠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동안 나쁜 생각들이 우리 영혼을 그 그물 속에 가둘 수 없다 하지 않는가.

그리고 ‘교부들의 길’ 이 책은 스쳐지나가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또 읽고 또 읽어 교부들의 말씀 하나하나를 다시 새기는 신앙의 길잡이로 삼아 신앙이 해이해질 때, 뭔가 삶이 시들하다고 느껴질 때 다시 읽어야겠다.


최순자 나마스테(namaste153)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3-11-1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5

토빗 4장 6절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을 거둔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