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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2-저자와 편집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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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라는 우리나라 고유의 속담들이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대표적 지혜가 되었는지 현대의 비평 기술로서는 아직까지 정확히 검증되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오래 전 지혜로운 무명씨(익명의 저자)에 의해 창안된 이 지혜가 그 기발한 발상과 인상적 메시지 때문에 여러 사람에 의해 회자되기 시작되었고 조금씩 다듬어지며(즉 첨가 삭제 수정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장은 더욱 탁월한 세련미를 띄게 되었고 급기야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까지도 그 천재적 「말빨」로서의 효력이 인정되어 여전한 권위를 갖춘 채 그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위의 속담들을 모르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 외국인이거나 간첩일 것이고 더욱이 이 문장들을 모르면 대한민국에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여러 말 필요 없이 단 한 개의 문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할 때 이러한 전통적 속담보다 요긴하게 쓰이는 첨단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잠언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주에는 저자와 그 편집과정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한다. 저자 성서 잠언 표제(1 1)와 1열왕 5 12에서 『솔로몬의 잠언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잠언의 저자를 솔로몬으로 쉽게 단정짓기는 어렵다. 이스라엘 전통 안에서 솔로몬은 언제나 지혜로운 인물의 대명사로 불려 왔고 지혜 운동(movement)을 적극 장려한 왕으로 유명하기에 이 표제는 그러한 전통적 의식의 산물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잠언의 일부 혹은 핵심부분만을 솔로몬 궁정에서 저술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서 잠언의 진정한 저자는 누구인가? 지난주에 언급한 바 있지만 성서 잠언은 여러 잠언집들의 모음(collection)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특수성을 반추해 본다면 자연스럽게 이 작품은 여러 저자들의 작품이라는 점이 유추된다. 잠언 자체도 이미 여러 저자를 명시하고 있다.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왕 솔로몬(1 1); 히즈키야가 사람들을 시켜 베낀 것(25 1); 마싸 사람 야케의 아들 아굴의 말(30 1); 마싸 왕 그무엘이 그의 어머니에게서 배운 교훈(31 1)등이 그 흔적이다. 24 22에는 『이것도 현자들의 말씀』이라는 소제목이 있는데 이는 그 이전에 제시되었던 언급들도 익명의 현자들에 의해 제시된 말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22 20에도 『나는 너에게 서른 가지 잠언을 써 주지 않았느냐?』라는 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서른 개의 잠언」이 이미 독립적으로 존재했음을 제시한다.
이상의 흔적들만 봐도 성서 잠언은 수백 개의 가르침들을 몇 개의 덩어리로 모아놓은 수집물이라는 것과 따라서 이들의 저자 혹은 출처를 다 명시하기는 불가능한 것임이 드러난다. 여러 저자들과 이스라엘의 소중했던 전통들의 결합이 곧 잠언인 것이다. 편집연대 여러 저자들에 의한 그리고 오랜 기간 전달되어온 말씀들의 결합이기에 그 편집 과정을 추적한다는 것 역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복잡한 가설과 논쟁이 지금도 분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타당한 입장만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학자들은 잠언이 기원전 10세기부터 유배 이후인 4세기경까지 각 시기의 필요성과 요구에 의해 기록되고 편집된 문헌이라고 보고 있다. 10세기라면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이 평정되고 솔로몬에 의해 거시적 문예 진흥 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외국의 여러 지혜문학 작품들이 도입되고 이에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기 고유의 잠언들에 대한 제작 편집 작업에 착수하였으리라고 보고있다. 그리고 히즈키야 왕 시대에 잠언의 핵심부분인 25~29장이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는데 당시의 시대적 요구와 스타일 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개의 부록인 30장과 31장 1~9절이 첨가되고 유배 이후 10~24장이 다시 첨가된다. 이 책 전체에 대한 서론격인 1~9장은 마지막에 첨가되는데 이 때가 기원전 4세기 경인 것으로 보여진다.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의 국가적-민족적 정체성 회복을 위한 노력들이 잘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문학장르들 중에서 잠언만큼 특화된 장르도 없을 것 같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라는 문장에 대하여 저자도 제작 연대도 알 수 없지만 그 표현 안에는 그 어떤 지식보다 강한 전문성과 진중함이 절대적 진리로 빛을 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혜윤 수녀〈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광주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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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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