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법관’ 고(故) 김홍섭 판사(바오로·1915~1965)를 기억하는 ‘김홍섭 판사 기림 미사’가 4월 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이날은 ‘기억하다, 빛과 소금이 된 이들’ 미사의 3번째 시간이다. 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제안으로 서울대교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모범적인 삶과 신앙을 보여준 이들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해마다 상·하반기에 봉헌한다.
이날 정순택 대주교가 주례한 미사에는 교구 주교단과 사제단, 김 판사의 가족 16명, 가톨릭서울법조회 회원 15명, 신자 450여 명이 참례했다.
김홍섭 판사는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지방·고등법원 판사와 법원장,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법조인으로, 오늘날 ‘법조삼성’(法曹三聖)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김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롭게 판결하려 노력했을 뿐 아니라 사형수들을 손수 찾아 돌보고, 가난한 수인들을 도와 ‘수인들의 아버지’, ‘사도법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골을 자주 찾아 전교활동을 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복자 이순이(루갈다)의 생애와 사적을 널리 알리는 등 신앙인으로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정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공의회가 제시한 평신도상(像)을 놀랍도록 풍성하게 살아간 분”이라면서 “소년범들을 교화하고 사형수를 구원했으며 순교자를 현양하고 자선과 선교활동에 헌신한 평신도로, 가톨릭 교세가 그리 크지 않던 당시 가톨릭신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고 소개했다.
미사에 참례한 김 판사의 큰딸 김철효(효임 골룸바·79)씨는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느라 굉장히 고생하시고, 자기 직업 안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 열심히 사신 분이셨다”며 “정치·사회 상황에 법 관련 문제들이 많은 오늘날, 아버지의 모범이 널리 전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도법관’ 고(故) 김홍섭 판사(바오로·1915~1965)를 기억하는 ‘김홍섭 판사 기림 미사’가 4월 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이날은 ‘기억하다, 빛과 소금이 된 이들’ 미사의 3번째 시간이다. 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제안으로 서울대교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모범적인 삶과 신앙을 보여준 이들을 기억하고 본받고자 해마다 상·하반기에 봉헌한다.
이날 정순택 대주교가 주례한 미사에는 교구 주교단과 사제단, 김 판사의 가족 16명, 가톨릭서울법조회 회원 15명, 신자 450여 명이 참례했다.
김홍섭 판사는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지방·고등법원 판사와 법원장,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법조인으로, 오늘날 ‘법조삼성’(法曹三聖)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김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정의롭게 판결하려 노력했을 뿐 아니라 사형수들을 손수 찾아 돌보고, 가난한 수인들을 도와 ‘수인들의 아버지’, ‘사도법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골을 자주 찾아 전교활동을 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복자 이순이(루갈다)의 생애와 사적을 널리 알리는 등 신앙인으로서도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정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인물이라 할 수 있지만, 공의회가 제시한 평신도상(像)을 놀랍도록 풍성하게 살아간 분”이라면서 “소년범들을 교화하고 사형수를 구원했으며 순교자를 현양하고 자선과 선교활동에 헌신한 평신도로, 가톨릭 교세가 그리 크지 않던 당시 가톨릭신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고 소개했다.
미사에 참례한 김 판사의 큰딸 김철효(효임 골룸바·79)씨는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느라 굉장히 고생하시고, 자기 직업 안에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범위를 찾아 열심히 사신 분이셨다”며 “정치·사회 상황에 법 관련 문제들이 많은 오늘날, 아버지의 모범이 널리 전해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