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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릉4동본당 가톨릭 스카우트 대원들이 노숙인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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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로 입구 지하도에 빨간 산타 모자가 걸어간다. 한 손에는 떡, 다른 한 손에는 뜨거운 차를 든 채다. 낡은 침낭을 덮고 누워있는 노숙인을 발견하고는 쭈뼛쭈뼛하더니 조심스레 다가간다. 살며시 떡과 차를 내려놓고는 공손히 인사를 한다.
“예수님 만나러 왔어요.”
12월 12일 밤 9시30분 서울 정릉4동본당 가톨릭 스카우트 로사리오대 30여 명의 대원들이 빨간 모자를 쓰고 산타가 돼 ‘거리의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 서울 카리타스 봉사단(단장 조창규)과 함께 동절기 노숙인 동사 방지를 위한 순찰길에 오른 것.
을지로에서 서울역까지.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노숙인의 손 위에, 얇은 포대기를 둘둘 말고 잠든 노숙인의 머리맡에, 종이 박스로 집을 짓고 있는 노숙인의 등 뒤에 아이들의 손길이 스민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이 잠시 따듯해지는 순간이다. 1인 1개씩만 배식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어린 산타들의 마음은 여리다. 노숙인의 “하나만 더…” 한 마디에 떡 두 덩이가 한 사람의 손에 쥐어진다. “칠백육십이, 삽십이, 구백이십일…” 숫자로만 이야기하는 ‘창동 할머니’는 떡과 차를 받아들고 감사의 표시로 ‘숫자 인사’를 했다. 속 깊은 어린 산타는 당황하지 않고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답한다. “네, 할머니. 맛있게 드세요.”
2시간 여의 순찰이 끝나자 서울역 광장에 밥차가 출동했다. 서울역의 노숙자들에게 뜨끈뜨끈한 컵라면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재빠르게 대열을 정비한다. 두꺼운 외투도 벗어던졌다. 빨간 산타 모자에 스카우트 제복차림이 의젓하다.
배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밥차를 보고 몰려온 노숙인 줄이 길다. “물이 왜 이렇게 안 끓나. 가스 좀 확인해봐.” 아이들의 마음은 초조하다. 밤 11시. 라면 배식이 시작되자 서울역 광장은 잔칫집 분위기다. 벤치에, 계단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얼추 배식이 끝나자 “여러분도 라면 한 사발씩 해”하며 대장님의 명령이 떨어진다. 아이들은 “와~” 환호성을 지른다. 라면을 후루룩 삼키는 아이들의 볼이 발갛다. 꽁꽁 얼었던 손을 녹인다.
거리의 예수님과 거리의 산타가 만나 함께 컵라면을 먹는 풍경. 뜨거운 국물 한 모금에 뱃 속이 든든하다.
“이제 노숙인이 무섭지 않아요. 오늘 밤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 할 거예요.”
임양미 기자
sophia@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