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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콘 종합 백과사전’과도 같은 격의 신간인 「이콘 그리고 동방의 얼굴들 미와 빛의 신학」을 이콘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번역한 장긍선 신부가 이 책에 실린 이콘을 소개해 주고 있다. |
이콘(ICON, εκον, Икона). ‘형상’ 혹은 ‘모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이콘은 성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성경에 대한 관상 신학에 예술가의 자질이 결합돼 2000년의 교회 미술 전통으로 내려왔다. 동방 정교회 성미술이라고만 치부해 버리기엔, 이콘은 카타콤베(Le Catacombe) 성화나 성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 교회부터 비롯됐을 뿐 아니라 참된 가톨릭 신앙과도 일치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신비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제공한다. 그래서인지 최근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이콘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고, 궁금해하거나 관심을 갖는 이들도 많아졌다.
이처럼 이콘은 이미 우리 신앙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이콘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또 부분부분의 디테일이 갖는 의미나 상징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저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이콘의 의미와 상징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이콘 종합 백과사전’과도 같은 신간이 나왔다. 「이콘 그리고 동방의 얼굴들 미와 빛의 신학」(기쁜소식)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미술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알프레도 트레디고가 쓴 같은 제목의 이탈리아어판 저술이 원전이다. 이를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담당 장긍선 신부와 이콘연구소 회원들, 전문 번역가인 김정윤(클라라)씨, 포콜라레 종합예술단체인 ‘젠 베르데’ 단원 출신 민순신(마리아 레지나)씨 등이 3년에 걸친 번역 작업 끝에 최근 선보였다. 여기에 정교회 관련 용어 해설과 사진 도판이 부록으로 덧보태졌다. 비록 저서가 아니라 번역서지만, 아직은 척박한 한국 교회의 이콘 제작과 연구에 의미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446쪽 분량의 컬러 도판으로 채워진 이 책은 주제별로 400여 점의 이콘을 소개하고 있다. 정교회 성당 안에서 지성소와 신자석 사이에 이콘들로 채워진 성화벽(Iconostasis)과 정교회 교회력에 따른 이콘들을 비롯해 구약성경, 복음 이야기와 축일,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구세주 그리스도, 사도와 순교자들, 초기 주교들, 동방의 수도(修道) 성인들, 러시아 성인들 관련 이콘이 주제별로 등장한다. 이콘의 역사는 가능한 한 간략하게 소개하고, 개별 이콘의 역사나 관련된 기적, 이콘의 근거가 되는 성경이나 전례서 구절, 축일 날짜에 따른 이콘 등을 위주로 해설한다.
이 책은 특히 이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콘하면, 아직도 ‘베낀다’는 말이 나오는데, 전 세계에 똑같은 이콘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콘도 교회가 정한 틀 안에서 제작하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제작하는 이의 기도, 영성, 미적 재능이 다 제각각이기 때문에 같은 이콘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콘 제작은 성경필사에 비유되곤 합니다. 성경을 읽고 쓰듯이, 이콘도 보는 게 아니라 ‘읽는다’고 하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쓴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콘을 쓰는 작가의 영성과 기도가 가장 중요한 물감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 책을 내는 데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특히, 정교회의 용어를 뉘앙스까지 살려가며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최대한 정교회의 도움을 받아 우리말로 옮겼지만, 고유의 슬라브어 단어를 그대로 쓴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의 대표 번역자이자 감수자인 장긍선 신부는 이렇게 말한 뒤 이콘을 불화에 비유하고, “불화를 알려면, 불교 경전을 알아야 하듯이, 성화나 이콘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성경을 알아야 하고, 교리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신부는 이어 “이콘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하지만, 그래도 교회가 분열되기 이전의 하나였던 교회의 전통이었고 우리가 요즘 잘 접할 수 없는 초기 교회의 신앙과 영성을 우리에게 잘 소개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이콘에 담긴 초기 교회 신자들의 정신과 영성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고, 또 예수님이 원하셨던 하나였던 교회, 하나인 교회, 초대 교회로 되돌아가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