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어도 자이언츠’는 야구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야구에 문외한인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필자가 그랬다.
야구장에 간 관중들이 경기를 보면서 야구 속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이 영화는 관객을 순식간에 롯데 자이언츠 40년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역사를 보는 일은 우리 야구의 역사를 보는 일이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우리를 보는 일이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자료 영상 속에는 우리의 과거가 나온다. 그 과거는 현재의 우리와 연결된다. 과거에 우리가 어떠했는지를 봄으로써,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이 발전했고 성장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화질이 안 좋은 영상 속의 우리 모습은 지금보다 촌스럽다. 뉴스 멘트의 억양도 북한 방송을 보는 듯 딱딱하고 거세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지금 돌아보니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우리의 친구들, 동료들, 가족들을 다시 만난다. 잊고 있던 뜨거움을 다시 느끼고, 그리움이 소환된다.
한때 빛나는 우승도 하고, 전설적 인물로 불릴만한 선수들을 배출했던 롯데 자이언츠는 1992년 이후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 팬들은 욕하면서도 자이언츠를 떠나지는 못하겠다고 한다. 왜 팬들은 지지부진한 롯데 자이언츠를 떠나지 못할까? 왜 그들은 야구 시즌이 돌아오면 다시 야구장으로 향하고, 롯데 자이언츠를 다시 응원하게 될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이해가 된다. 그건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그들에 대한 애정이, 믿음이, 그리고 희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서른네 명의 인터뷰이들은 전ㆍ현직 야구선수들, 팬들, 스태프들이다. 자료 필름들에 나오던 젊은 야구선수들이 중년의 아저씨들로 변해 인터뷰에 응한다. 중년이었던 감독은 어느새 머리가 하얗다. 선수들과 인터뷰를 한 사람 중에 고인이 된 이들도 나온다. 그들을 기억하며 인터뷰이는 울먹인다. 그 화면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가도 촉촉해진다.
앞에서 필자는 이 영화가 야구에 대한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다시 말하겠다. 이 영화는 야구를 넘어 우리에 대한, 우리 삶에 대한 영화다.
시간은 흐른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도 변한다. 우리의 지나간 시간 속에서 함께 한 이들, 빛나는 시절을 함께 보낸 이들, 우리의 배경 막이 되어준 이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죽어도 자이언츠’는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 옆에 있는 이들, 함께 걸어가는 이들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쇠는 쇠로 다듬어지고 사람은 이웃의 얼굴로 다듬어진다.(잠언 27,17) 10월 27일 극장 개봉
서빈 미카엘라(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 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