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만나 봤으면 합니다
허영엽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기자는 못했을 거예요(웃음).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면도 있어서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예민하고 상처를 잘 받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뭘 하는 걸 좋아했어요. 하루 종일 책 읽고, 혼자 영화도 보고. 지금처럼 다양한 전공이 있었다면 영화 이론을 공부했을 것 같아요.”
웬만한 기자보다 글을 많이 쓰고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사제가 되지 않았다면 언론인을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전혀 외향적이지 않단다. 신학교에 진학한 뒤 좀 나서서 일을 맡았더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본지 독자들에게는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코너로 더욱 친숙할 허 신부를 이번에는 기자가 만나 보았다.
“가톨릭평화신문이나 방송에 노출이 안 된 신자들이 꽤 많더라고요. 제가 18년간 서울대교구 일을 해오며 다양한 분을 만났고, 특히 청년성서모임에 오래 참여하다 보니 각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분을 많이 알게 됐어요. 다른 신자들에게 이런 분들의 삶을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신문에 실린 분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돼서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기자들처럼 인터뷰 대상자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고 질문을 뽑고 현장에서 녹음을 하지도 않는다. 나름 오랜 인연이고 쌓인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추가 질의와 보완 작업을 거쳐 술술 써내려갔다.
하나하나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그 추억을 잘 간직해온 그의 섬세한 감성은 한 권의 책으로까지 엮어졌다. 본당에서 만난 어린아이나 할머니부터 김수환ㆍ정진석ㆍ염수정 추기경 등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교구장 수석 비서, 교구 대변인의 소임을 맡으며 가까이 접한 가톨릭교회의 큰 어른들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전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간단하게라도 일상을 적어두곤 해요. 어렸을 때 받은 쪽지도 가지고 있고요. 그런 걸 없앴으면 기억이 왜곡될 수 있는데, 보면 지금도 그때 일이 다 떠오르더라고요. 정 추기경님도 저와는 세대가 다르니까 식사할 때나 경험하셨던 재밌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면 짧게라도 적어 두었거든요. 그 기록이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일대기를 쓰는 중요한 밑천이 됐어요.”
허 신부가 과거 출간했던 「신부님, 손수건 한 장 주실래요?」에 또 다른 만남과 이야기를 더한 「당신을 만나 봤으면 합니다」는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고 하느님의 말씀이 깃들여 있다고 말한다. 또 시간이 흘러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타인들처럼 자신도 누군가의 기억에 따뜻하게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참 전의 이야기도 많은데 그때는 몰랐던 것 같아요.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 모두 신앙인으로 만나는 거잖아요. 그 만남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성장하게 만들 수 있는 만남이었으면 좋겠고요.”
책에도 여러 에피소드에 나오지만, 성수대교 붕괴를 비롯해 만남 뒤에는 헤어짐도 있지 않던가. 현재 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이기도 한데, 이번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뜻하지 않게 만나는 숱한 이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 너무 안타깝죠, 아깝고. 하느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인간으로서는 그 뜻을 알 수 없으니까요. 우리 어른 세대의 책임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것도 위로가 안 되겠지만,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함께 해주고 공감해주는 게 먼저겠죠. 또 책임 있는 어른들이 있을 때 더욱 성숙된 사회, 발전하는 사회를 희망할 수 있을 테고요.”
허 신부는 오는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중림로 가톨릭출판사 신관 1층에서 최근 출간한 책들을 중심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강연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