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의 탄생 전 이야기 (박유진 신부, 공동제작사 가톨릭문화원장)
물줄기 하나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6, 7년 전부터 문화원 미사에 참여하는 친구가 있다. 초중고 동창인 박흥식은 서울대 독문과 출신의 학구파이며 영화감독이다. 미사에 오면 마음이 편하고 영성체 때 안수를 받고 나면 예술가의 영감에 은총이 내리는 듯하다. 부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편집감독 박곡지다.
물줄기 둘
2020년 봄에 개봉된 영화 ‘저 산 너머’가 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년시절을 다룬 수채화 같은 이 영화는 자수성가하여 중견기업을 이룬 남상원 회장이 40억 원을 단독 투자하여 완성된 작품이다. 개봉된 영화는 누적 관객 10만을 조금 넘었다. 투자비용으로 따지면 35억은 날린 셈이다. 남 회장은 열심한 불교도였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계기로 김수환 추기경의 세례명을 따라 스테파노란 세례명으로 개종한다.
물줄기 하나 더하기 하나가 되어
논산 출신 남 회장이 존경하는 고향 선배 유흥식 추기경께서 영화를 제안하셨다. 당시 대전교구장이던 추기경께서 2021년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앞두고 소박한(?) 영화 제작을 소망하실 때 남 회장은 벤허처럼 100년을 이어갈 기념비적 영화를 역제안한다. 투자자의 제안으로 150억의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뜬금없이 남 회장과 박 감독이 찾아오셨다. 성 김대건 신부님 영화 제작의 의기투합이 시작된 거다. 박 감독은 중국, 프랑스의 고서와 수많은 논문을 읽고 철저한 고증에 입각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고 사제인 나조차도 모르던 김대건 신부님의 숨겨진 진면모가 발굴되고 있었다.
강이 되다
대본은 감동적이었고, 최고의 배우들과 각 분야 감독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역 윤시윤과 안성기, 윤경호, 이문식, 이호원, 임현수, 하경, 송지연, 김강우, 이경영, 신정근, 최무성, 김광규, 강말금, 최정화, 정유미, 성혁, 남다름, 박지훈 등이 저마다의 주요 역을 맡게 된다. 영화를 소개하는 언론은 “역대급 캐스팅”, “등장 배우들, 이게 실화냐?”, “홀리 블록버스터 탄생” 등의 제목으로 ‘탄생’을 소개하고 있다.
바다로 간다
축복의 낭보가 날아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투자사와 감독과 배우들을 교황청으로 초청하셨다. 11월 16일 교황님을 알현하고 축복받는 날, 교황청 시노드홀에서 교황청 시사회를 한다. 성 김대건 신부님이 교황청 안에서 세상에 탄생하는 날이다.
김대건 신부님의 라파엘호를 타고 영화 ‘탄생’은 11월 30일, 세상의 바다로 간다. 콜레라 팬데믹과 중국의 아편 전쟁, 질곡의 시대에 절망의 민중이 간절히 기다리던 진인(眞人)이 되어 근대의 문을 여는 성 김대건 신부님에게서 구원의 길을 만난다. 한 번 흥행한 적 없는 한국 가톨릭 영화의 역사에 성인의 족적으로 다시 도전한다. 김대건 신부님이 가슴에 안고 건넜던 그 소명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