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생활
안성철 신부 지음 / 시공사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부의 존재는 잘 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라도 수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수사 신부는 어떤 사람일까? 또 그들이 사는 수도원은 어떤 곳일까?
“사람들이 수사님의 존재를 너무 몰라요. 우리 수도원이 바오로딸과 붙어 있는데, 동네 사람들도 수녀님은 알아보지만 우리는 수도원에서 일하는 직원으로 알거든요.”(웃음)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해 2001년 사제품을 받은 안성철(마조리노) 신부가 30년의 수도원 생활을 엮은 「신부 생활」을 펴냈다. 수도회 입회 기준이 유머감각 내지는 엉뚱함인지 의심스럽게, 근엄하고 엄숙한 수도원 이야기가 아니라 유쾌하다 못해 포복절도할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농담과 장난은 일상이요, 수도자들도 귀여운 거짓말을 하고, 이른바 땡땡이를 부린다.
“저는 수도원에서 지내는 게 행복하고 즐거워요. 고행하려고, 죄인들의 보속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온 게 아니거든요.”
수도원 사제가 교구 사제와 가장 다른 점이 바로 공동체 생활이다. 안 신부는 공동체가 좋아서 수도회에 입회했다. 그런데 아무리 수도원이라고 해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게 어디 쉬울까.
“매우 힘든 사람도 있죠. 그게 수도원에 사는 의미이고 고행이에요. 고행을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그 많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 수도원에서 잘 살면 아마 결혼해서도 잘 살
요.(웃음) 그리고 저희가 매일 이렇게 웃고만 지내는 건 아니죠. 진지하게 기도하고, 우울한 날도 있고, 일할 때는 의견이 달라서 다투기도 하고요.”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그렇듯 안 신부 역시 지난 30년간 서울에서 제주로, 미국에서 영국으로 자주 사목지를 옮겨야만 했다. 짐은 캐리어 하나에 라면박스 5~6개 정도. 많은 사람이 그토록 갈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청빈, 정결, 순명’의 종신 서원을 지키면서 그토록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결혼하라고 하면 나도 당장 하죠.(웃음) 가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도 사제가 될 거냐고 물어봐요. 제가 19살에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한 번 이렇게 살아봤으니 다음 세상에는 19살에 장가가려고요. 그리고 수도원은 필요한 걸 청구하면 다 사줘요. 이동하는 곳마다 기본적인 가구나 이불은 있으니까 짐이 단출할 수밖에 없죠.”
성 바오로 수도회는 매스컴의 역할이 커질 것을 내다본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가 100여 년 전에 인쇄기술학교를 세우면서 설립한 수도 공동체다. 매스컴과 미디어가 선한 영향력을 갖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출판을 중심으로 여러 매체를 활용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수도회별로 하는 일이 다양해요. 우리는 주로 책을 만들지만,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을 도와주는 곳도 있고, 농사짓고 치즈 만드는 곳도 있고요. 책을 읽고 성소자 모임에 와보고 싶다는 이들도있는데, 무엇보다 ‘내가 그곳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해요.”
이번 책은 몇 년 전 진행했던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마조리노 신부의 주크박스’가 단초가 됐다. 그때 들려준 수도원 이야기를 우연히 접한 출판사 관계자가 책을 엮자고 제안했다.
“제 방송에 하느님이나 성경 구절이 한 번도 안 나오는데, 하느님이 느껴지고 성경 말씀이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출간을 제안하시더라고요. 불현듯 ‘이게 현대의 복음화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책 작업은 관계자와 그 아내가 세례를 받는 계기가 됐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수도원 생활을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게 됐다. 출판사에서는 투박하고 진솔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맞춤법 외에는 손대지 않았다는데, 문장력이 좋은 것인지 특유의 유머감각 때문인지 첫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평균 연령 40대 중후반의 수도자들이 모인 곳이 마치 대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처럼 유쾌하고 호탕하다.
“바오로 사도가 언제나 기뻐하라고 했는데, 방송이나 라디오, 책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매체잖아요. 우리가 웃고 행복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느낄 수 있어야죠. 오늘이라는 하루는 하느님이 허락해주신 놀이터입니다. 모든 분이 평범한 일상에서 하루하루 눈을 뜨고 깨어서 재밌게 생활하셨으면 좋겠어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