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성탄 대축일과 연말에 읽을 만한 책
방종우 신부 글 · HYUN HO 그림
레벤북스
책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어린이에게 선물하면 낭패다.
「산타들」은 어른을 위한 동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이들은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놓고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고, 그런 아이들의 웃음은 산타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세상은 변했고 사람들은 산타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한때 잘나가던
산타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남은 산타는 이제 네 명. 무한 경쟁의 시대, 내일에
대한 장밋빛 꿈을 꾸기 힘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평균 수명 120살의 피터,
폴, 존, 제임스 산타가 주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
그대로 괜찮은 너에게
필신부 글 · 무뭄뭉 그림 / 인디콤
한 해를 마무리할 때면 뿌듯함보다는 늘 후회가 앞선다.
바쁘게 달려왔건만, 딱히 이룬 것도 없는 것 같고 나만 뒤처진 듯하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이들에게 ‘그대로 괜찮다’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책이 나왔다.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지금 그대로 괜찮다’고.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다. ‘그대로 괜찮은 너’라고.(프롤로그)
‘필신부’라는 필명의 저자는 서른두 살에 신학교에
입학해 이제 막 40대가 된 가톨릭 사제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간 직장생활도 경험했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께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지만
그 선물을 제대로 누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본인의 ‘죄’보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유를 다채롭게 사색한 책은 그리스도교 신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필신부는 특히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과
삶에 지친 40대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거리의 성자 블루 이야기
마일스 코널리 지음
김석희 옮김
섬앤섬
「거리의 성자 블루 이야기」는 ‘블루’라는 기이하고
순수한 인물의 미스터리하면서도 매력적인 삶을 다룬 소설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일스
코널리의 「Mr. Blue」를 번역한 책으로, 이미 1세기 전에 발표됐다. 1928년 출간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Mr. Blue」는 이듬해 ‘가톨릭 노동자운동(Catholic
Worker Movement)’이 시작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며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했다.
평범한 눈으로 보면 비정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블루의
삶은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일컬어지는 프란치스코 성인, 사유재산을 비난하고 사회평등을
주장한 토머스 모어 성인과 겹쳐진다. 가령 유산으로 물려받은 재산을 하인들에게
나눠주고 그 자신은 빈털터리가 되는가 하면, 타인을 대신하여 차에 치여 죽는 최후도
마찬가지다. 블루에게는 인간의 영혼을 구하고, 타인을 고귀하고 친절하게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연인에게 다가가듯 가난을 향해 다가가면서도
누구보다도 행복했고, 행복할 이유가 넘쳤다.
동시대에 발표된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가 호화로운 저택, 멋진 차와 많은 은행 잔고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다면 「거리의 성자 블루 이야기」에서 블루는 물질이 아니라 ‘신’을 향한 믿음의 실천을 통해 삶의 가치를 확인한다. 마천루 옥상에 텐트를 치고 살면서 빌딩 숲 너머로 연을 날리는 블루의 행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바람일 것이다.
나는 행복을 그립니다
박혜령 지음 / 서교출판사
박혜령(아델라) 화백의 삶과 꿈, 그리고 행복론을
엮은 책이다.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지난 2006년에야 50세의 나이로
본격적인 화가의 길에 들어선 작가는 어려움을 극복하며 형성된 긍정적인 세계관과
여행을 통해 깊어진 사유로 일곱 차례의 개인전을 지나는 동안 한층 성숙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책은 호숫가에 앉아 그림을 끄적이던 어린 시절부터 아내와 엄마로
살아온 지난 세월, 그리고 암 투병과 사별이라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아를 찾아간
자전적 에세이 서른여섯 편을 담고 있다. 박 작가의 궁극적인 바람은 책 제목처럼
‘행복을 그리는 것’. 그녀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진정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글과 함께
그 행복을 담은 사진과 그림도 실렸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듯 내 꿈도
원래의 빛깔과는 달라졌다. 그렇지만 무수한 상처를 거쳐 인생의 새로운 바다로 나아가는
지금, 내가 그리는 것은 감히 행복이라 고백하고 싶다.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내가
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한 것 같지만, 동시에 그런 내가 되기 위해 지금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13쪽)
키아라의 선택
시모네 트로이시·크리스티아나 파치니 지음
최문희 옮김
바오로딸
“스물네 살에 임신한 키아라는 아기가 태중에서 자라게
두었습니다. 아기는 뇌가 없었습니다. 키아라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배 속에서
아이가 자라게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대안이란 무엇입니까?”(56쪽)
이 책은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절차가 진행 중인 키아라의
삶에 대한 증언집이다. 키아라는 1984년생으로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태중에 있는 첫아이와 둘째 아이가 모두 심각한 장애를 지녀 태어나도
생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끝까지 품은 뒤 출산과
함께 하느님께 보내드렸다. 셋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암이 발견되었다. 행여 태아에게
해가 될까 치료를 미루다, 결국 아이와 남편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야만 했다.
키아라는 말한다. 자기에게 닥친 모든 것을 머리로
이해하려 했다가는 미치고 말았겠지만, 그 순간순간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응답했노라고.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춤출 수 있었고 평화 가운데
기쁨을 살아갈 수 있었다고.
지난 2012년 6월 28세의 나이로 키아라가 세상을 떠난
뒤, 남편 엔리코는 사방에서 몰려드는 요청에 일일이 대처할 수 없어서 영적 지도
신부인 비토 다마토 신부와 상의하고 키아라 가까이 머물렀던 시모네와 크리스티아나에게
부탁해 이 책을 펴냈다. 이탈리아의 이름 없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은 6년 만에
24쇄를 찍었고, 삶의 매 순간 생명과 사랑에 관한 진리를 선택한 키아라는 시복절차가
진행 중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