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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포, Anthropocene 4, 2022. |
이탈리아 작가 피에트로 루포(Pietro Ruffo)의 국내 첫 개인전 ‘인류세, Anthropocene’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다울랭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낯선 작가일 수 있지만, 루포는 국제무대에서 이민자, 유럽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잔해, 중동 지역의 정치·종교 분쟁 등 현시대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들을 조명하는 작품 활동을 펼쳐왔고, 더불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와도 협업하며 대중 인기도 얻어왔다.
이번 전시 ‘인류세, Anthropocene’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인류와 자연 간의 관계 및 인간의 산업 활동이 기후에 미치는 유해한 영향을 표현했다. ‘인류세(人類世)’는 인류로 인해 빚어진 새로운 지질 시대를 칭하는 용어로, 인간이 초래한 환경적 변화가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압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 달리 그의 작품들은 획기적이고 신선하다. 직사각형 캔버스 위에 자리하고 있지만, 평면 회화는 아니다. 마치 곤충박제 표본처럼 입체적이며, 얼핏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백 그라운드가 세계 지도나 울창한 원시림을 그렸다면 컷아웃(Cut-Out) 기법으로 정교하게 오려낸 부분은 이집트 문명, 주요 건축물 등 주로 인류가 만들어낸 모습으로, 높이감 있게 핀셋으로 고정해 전체적으로 하나의 화폭을 완성한다.
전근대 거주 지역과 농경사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흔적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선사시대 이후 식량, 보금자리, 생존을 위한 인간의 투쟁과 기후의 연관성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낡은 노랑, 갈색의 파편들이 강렬한 파랑, 선명한 보라색 줄기를 만나는 모습은 인간의 개입으로 급변하는 자연계를 상징한다.
특히, 여러 작품에서 ‘두개골 형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니타스(허무주의)의 상징이기도 한 해골은 개인의 죽음을 넘어 인류의 멸종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우리의 이기심은 자연을 인간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게 하였다. 우리는 지구상에서 인류의 종말을 야기하지만, 결단코 지구의 종말을 초래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남다른 철학이 있는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바티칸 도서관을 비롯해 브라질 아르테 컨템포러리 박물관, 중국 항저우시 저장 미술관, 미국 워싱턴DC 힐리 어 IA&A 미술센터, 이탈리아 국립 현대 미술관 등에서 소개되었고, 바티칸 박물관, 베를린 도이치뱅크 컬렉션, 루치아노 베네통 컬렉션을 비롯해 여러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허영엽(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신부는 “피에트로 루포의 작품은 성경의 모든 진리와도 깊이 닿아 있다”며 “그래서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바티칸 도서관에서 개최된 전시회를 직접 관람하시며 그에게 따듯한 격려를 해주셨다”고 전했다.
피에트로 루포(1978~ )는 로마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의 이탈리아 고등연구원에서 연구 펠로우십을 시작했다. 2019년 프레미오 카이로 상을, 2010년에는 프레미오 뉴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는 2월 18일까지 갤러리 정기 휴일인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을 제외하고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797.2329, 다울랭 갤러리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