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시어 도와주소서, 하늘이시어 지켜주소서.” 안중근 의사가 간절하게 부르는 노래가 기억에 남는 영화 ‘영웅’(감독 윤제균)은 그가 거사를 준비하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사형 선고를 받기까지 1년의 삶을 뮤지컬로 만든 영화이다. 외국에서는 뮤지컬 영화의 성공 사례가 많아 유명한 작품이 셀 수 없이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규모 스케일과 막대한 제작비로 인해 도전하기 힘든 장르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 드라마를 오케스트라 연주와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으로 버무려 뜨거운 감동을 주는 ‘영웅’이 한국 뮤지컬영화의 새 장을 열기를 기대해 본다.
도입부의 광활한 설원에서 안중근과 11인의 동지들이 죽음을 각오하며 다짐하는 ‘단지동맹’ 장면은 영화와 뮤지컬의 장점을 극대화해 독립군의 강한 의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 영화가 각별하게 우리들의 시선을 끄는 부분은 가톨릭 신자로서의 토마스 안중근이다. 안중근 의사가 중요한 순간마다 천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의 손에 든 묵주는 고향집을 떠날 때 어머니 조 마리아(나문희 역)가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안중근의 거처를 끝까지 불지 않고 심한 고문 끝에 숨을 거두는 동지의 장례식이 성당에서 치러지는데, 동지를 잃은 슬픔을 누르지 못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향해 절규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느님 앞에서 무엇이 두려우랴”라며 용기를 구하는 장면은 장부의 담대함을 보여주면서도, 천주님께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거둬달라며 “당신의 뜻을 믿고 따르겠다”는 애절한 모습은 골고타 언덕의 예수님을 연상할 정도로 하느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 후반부에는 아들의 사형 언도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수의를 만들며 아들에게 당부하는 편지를 쓰는데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니 딴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라는 장면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 그녀의 방에는 아들과 찍은 가족사진 외에 십자가와 아기 예수님을 안은 성모상이 중심에 있어 평소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는 조 마리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뮤지컬에서 안중근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 누구보다 안중근의 삶과 작품을 이해하고 있는 배우 정성화가 영화에서도 캐스팅되어 열연을 하는데, 뮤지컬의 생생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영화에서는 동시녹음을 택하고 절제된 연기와 입체감 있는 영상으로 뮤지컬 영화의 웅장함을 잘 표현한다. 가상의 설정으로 등장하는 설희는 조선의 마지막 궁녀라는 신분을 감추고 거사에 도움을 주는 스파이역인데, 배우 김고은의 탁월한 노래 실력과 연기력으로 영화의 극적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 영화 ‘영웅’과 같이 뮤지컬뿐만 아니라 TV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웹툰 등 ‘크로스 미디어’의 활용으로 한국 콘텐츠가 글로벌한 세상을 선도하기를 희망해 본다.
12월 21일 극장개봉
이경숙 비비안나(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