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 묵상에 도움 될 만한 도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40일간 기도와 참회에 도움이 될 만한 도서를 살펴봤다.
사랑의 계시
노리치의 율리아나 지음
강대인 옮김
가톨릭출판사
「사랑의 계시」는 노리치의 율리아나가 1373년 깊은 병고 중에 하느님께 받은 계시와 이에 대해 묵상한 기록이다. 그녀는 중세 잉글랜드의 뛰어난 신비가이자 은수자로, 당시 노리치에 있는 성 율리아노 성당 인근의 작은 은수처에서 살았다. 율리아나는 16차례 환시를 경험했고, 그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 그 계시를 통해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해하며 구원에 다가간다. 또 죄의 결과가 고통이지만, 고통을 통해 정화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되므로 죄의 기능도 구원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그리스도가 수난당하신 것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기에 인간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실 때에 자유롭게 주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슬픔 안에 있도록 고통을 주십니다. 그 둘 다 하나인 사랑입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위로 안에서 우리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지복은 영원히 지속되며, 고통은 지나가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해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에 대해 슬퍼하고 탄식하며 그 감정을 따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고통을 속히 초월하여, 영원한 기쁨 안에 머무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제15장 ‘고통의 감정을 따르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님’ 중에서)
율리아나의 삶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사랑의 계시(Revelations of Divine Love)」는 여성이 영어로 남긴 첫 작품으로 영문학에서도 매우 중요시한다. 이번 책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0년에 남긴 관련 강론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되어라
박재찬 신부 글 · 하삼두 그림
분도출판사
“깊은 명상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분과의 신비로운 사랑의 일치를 체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관상(觀想, contemplation)’이다. 이러한 하느님 사랑과의 일치는 우리가 우리 자신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힘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은총으로서의 관상 체험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일상’의 중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관상을 통해 깨어난 이는 거창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것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작은 들꽃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이들이다.”(36쪽)
토마스 머튼(1915~1968)은 북미에서 널리 알려진 현대 영성가다. 오늘날 많은 이가 머튼의 영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의 삶과 영적 여정을 통해 스스로를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고 힘들게 살았으며, 지적 반항아로 방탕하게 살았다. 수도자가 된 뒤에도 방황과 혼란은 지속됐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하느님을 찾고자 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토마스 머튼을 연구한 박재찬(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신부는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자신이 소화하고 묵상한 머튼의 영성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한 글과 여러 곳에 기고한 관련 글을 모은 것이다. 고독과 침묵, 기도와 관상을 통해 자신 안에 이미 살아계신 사랑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과 하나 되어 그 사랑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머튼의 생애와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
(사순 묵상)
테레사 알리시아 노블 수녀 지음
민영문 옮김
바오로딸
“모든 언행에서 너의 마지막 때를 생각하여라. 그러면 결코 죄를 짓지 않으리라.”(집회 7,36)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네가 죽는다는 것을 잊지 마라’는 뜻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외치게 했다. 이는 개선장군에게 겸손을 일깨우는 경고 장치였다. 이 문구는 삶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죽음을 의식하고 현재 삶의 참된 가치를 찾도록 교훈을 준다.
「기억하라 - 메멘토 모리(사순 묵상)」는 죽음을 묵상하는 오래된 영적 훈련 전통인 ‘메멘토 모리’를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날마다 실천할 수 있는 묵상서다. 매일의 묵상은 여섯 단계로 구성된다. 당일 전례 말씀의 성경 장절을 소개한 뒤 묵상을 이끌 성경 구절을 인용한다. 이를 중심으로 메멘토 모리 묵상 글이 주어지고, 죽음의 순간을 생각하며 하루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여러 상황에 놓인 세상의 많은 이를 위한 중재기도로 이어진다. 이후 교부들과 성인들 말씀이 주어지고, 마지막으로 묵상과 기도를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하도록 이끈다.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
유성이 지음
멘토프레스
‘죽음’에 대한 책이다. 아니,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책이다. 저자 유성이(마리아) 씨는 2007년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본격적으로 ‘죽음학’을 연구하며 박물관, 호스피스병원, 학교 등에서 죽음과 삶을 성찰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보다 12년을 더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쓸쓸한 죽음을 지켜보며 노년의 삶과 인간적 임종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책으로만 하는 연구가 아니라, 2020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호스피스(hospice, 임종이 다가온 환자를 전인적으로 돌봄) 병원에 뛰어들었다.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는 유성이 작가가 ‘간병사’로서 직접 체험한 기록이다. 2021년 1월 22일 호스피스병원에서 만난 88세 어르신(도미니코)이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생명을 지닌 한 인간으로 존재했던 22일간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담았다. 그 과정에서 저자 개인의 팍팍한 삶도, 부모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수많은 우여곡절도, 또 죽음을 맞이하게 될 노인들의 삶과 생각도 마치 내 얘기처럼 맞물린다. 현재 가톨릭대학교에서 생명윤리학 박사과정에 있는 저자는 인간적인 죽음을 맞기 위해 개인 스스로가 자기 돌봄을 하며 현실적인 준비도 해야겠지만, 타인의 도움이 절대 필요함을 강조한다.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는 추천사에서 “생의 말기를 지내는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담긴 이 책은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