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껍질을 깨고 태어나는 병아리.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달걀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와 닮았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 부활 대축일에 달걀을 나누며 기념한다. 이처럼 부활의 상징성이 담긴 달걀을 주님 부활 대축일에 나누기 시작한 것은 17세기경이다. 사순 시기 동안 엄격한 고행을 하던 수도자들이 주님 부활 대축일 아침에 기쁘게 부활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달걀을 먹는 데서 유래했다.
최근에는 비생태적인 환경에서 사육된 닭에서 얻은 달걀을 사용하는 대신 보다 친환경적으로 부활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환경과 생태를 생각하며 부활의 기쁨을 나누기 위해 분주한 서울 동자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지구를 찾아갔다.
■ 생태적 부활을 위한 ‘다른’ 선택
주님 부활 대축일을 일주일가량 남겨둔 4월 1일, 서울 동자동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지구 수녀들은 색다른 부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활 달걀을 만들 때 필요한 삶은 달걀과 색색의 필기도구, 포장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달콤한 냄새가 작업장에 가득했다. 식탁 위에는 밀가루와 설탕, 버터, 견과류가 놓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각종 재료를 넣어 반죽을 섞는 데 한창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완성된 반죽을 머핀 틀에 채워 넣고 있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서울지구 수녀들이 준비한 것은 컵케이크다. 5년 전부터 부산총원에서 함께 스콘을 구워서 나눴던 서울지구는 올해 지구 차원에서 컵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지구를 위해 애써준 은인들에게 보다 의미있는 부활 선물을 전하고 싶어서다.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회장 나현오 현오레지나 수녀)는 2015년 무렵부터 생태보전을 위해 주님 부활 대축일에 달걀 쓰기를 자제하자는 논의를 해왔다. 이에 각각의 수도회들은 부활절에 화분이나 잼, 매실액, 빵, 떡, 포도주 등을 나눠 왔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스콘과 컵케이크를 선택한 것은 우리밀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서울지구가 만드는 컵케이크(15개 기준)에는 우리밀 270g, 설탕 220g, 버터 200g과 각종 견과류가 들어간다. 케이크의 풍미를 위해 달걀이 빠질 수 없어, 3개만 쓰인다. 선물 포장 하나에 컵케이크가 6개 들어가니, 한 사람 선물을 기준으로 달걀이 1개보다 적게 쓰이는 것이다.
최숙경(율리엣다) 수녀는 “생태적인 부활을 보내고자 달걀 대신 총원에서 스콘을 함께 만들어서 가져왔는데, 올해부터는 서울지구가 자체적으로 선물을 준비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라며 “우리 수녀회 대전지구에서 수확하는 앉은뱅이 밀을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을 고민했고, 스콘보다 만들기 쉬운 컵케이크로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쿠키나 케이크를 구울 때는 주로 박력분이 사용된다. 글루텐 함량이 적어서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밀을 사용하면 식감이 떨어질까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최 수녀가 건넨 갓 구워낸 컵케이크는 겉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이 일품이었다. 게다가 자극적이지 않은 단맛에 우리밀의 고소한 맛이 더해져, 컵케이크로 자꾸 손이 갔다. 30곳에 보낼 컵케이크의 수는 250개가량. 전날부터 이어진 컵케이크 만들기 작업은 하루를 꼬박 보태도 모자랄 정도다. 달걀을 삶아 포장하는 작업보다 훨씬 수고롭지만, 최 수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생태를 살리면서 부활 시기를 보낼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 생명을 살리며 부활을 보내다
컵케이크에 들어가는 밀은 보통 밀과 달리 색이 어둡다. 붉은색을 띠는 앉은뱅이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토종밀인 앉은뱅이밀은 기원전 300년부터 우리 땅에서 자랐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일본이 가져가 농림 10호로 개량했다.
50~80㎝의 작은 키에 바람과 병충해에 강한 앉은뱅이밀은 낱알이 작고 찰기가 있으며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또한 지방 함량과 열량이 낮고 글루텐 함량이 적어 쿠키와 케이크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하지만 1982년, 밀 수입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국내 밀 생산 기반이 급격히 무너졌고 앉은뱅이밀은 한국인에게 외면받게 됐다. 2011년 기준 밀의 자급률은 1.0. 더욱이 앉은뱅이밀은 색이 붉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식탁에서 멀어졌고,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대전지구는 우리밀을 살리고자 직접 앉은뱅이밀 농사를 짓고 있다. 밀 농사를 시작한 대전지구 수녀들은 지난해 1t가량의 앉은뱅이밀을 수확했다. 고령인 수녀들을 제외하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원은 4명가량. 각자의 소임이 있음에도 수녀들이 시간을 쪼개 밀 농사를 짓는 이유는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서다. 힘들게 수확한 앉은뱅이밀은 수녀회에서 쓰이는 빵을 만들거나 선물용 제빵을 하는 데도 쓰인다.
최 수녀는 “우리밀을 안 먹으니 생산이 줄었고 제분소도 거의 사라졌다”며 “우리밀을 먹을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기에 우리 수녀회가 노력해 보자는 의미에서 앉은뱅이밀 농사를 작게나마 짓게 됐다”고 말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수녀들의 노력, 그리고 정성이 담긴 땀방울은 밀알 하나하나에 깃들어 또 다른 생명을 완성했다. 진정한 부활의 의미는 그렇게 작은 컵케이크에 담겨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최 수녀는 “우리밀 농사를 짓는 작은 실천이 생명을 살리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우리 신앙인들이 자연과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실천 속에서 부활 시기를 보내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