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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오전은 가고, 그리스도교 ‘오후’의 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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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오후 /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 지음 / 차윤석 옮김 / 분도출판사

“그리스도교가 지금까지의 수많은 형태가 초래한 위기를 극복하고, 문화적으로 크게 변화하는 이 시대의 도전에 고무적인 해답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의 정신적·제도적 경계를 과감히 뛰어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자기 초월 시대가 열렸다.”(20쪽)

“그리스도교 역사에서도 ‘잘못된 노화’가 이뤄질 위험이 있다. 개혁의 시기를 놓치거나, 심지어 정오의 위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려고 한다면, 불임의 닳아빠진 그리스도교의 형태를 낳을 수 있다. 현재의 위기를 신학과 영성의 심층적인 변화 없이 교회의 외적 개혁만으로 경솔하게 해결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로 위험하다.”(61쪽)

다소 혁신적인 경고는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외침이기에 더욱 신랄하면서도 발전적이다. 공산 정권 치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며 비밀리에 사제 서품을 받고 지하 교회에서 활동했던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은 최근 「그리스도교의 오후」라는 책을 펴냈다.

할리크 몬시뇰은 인생을 하루의 흐름에 비유한 심리학자 카를 융의 은유를 차용해서 책의 제목에 ‘오후’라는 단어를 넣었다. 그리스도교의 시작부터 근대의 문턱까지, 즉 제도적·교의적 구조를 세워 온 기나긴 시기가 ‘오전’이라면, 이어서 이런 구조를 뒤흔든 ‘정오의 위기’가 찾아왔고,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오후’로 넘어가는 문턱에 서 있다는 확신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토로하는 과거와 현재의 교회와 신학에 대한 진단 및 뼈아픈 성찰과 통렬한 비판은 상당 부문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는 “무르익은 시기, 성숙한 나이인 인생의 오후에는 인생의 오전과는 다른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영혼의 여로,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인생의 오후는 카이로스, 즉 정신적·영성적 삶이 펼쳐져 나갈 적기이며, 평생에 걸친 성숙의 과정을 완성할 기회”라며 오후에 성숙하고 깊어지는 삶처럼 교회도 그럴 수 있는 채비를 갖추어야 하고, 전통적 의미의 선교가 종말을 맞은 이 시기에는 자기 비움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책은 또한 그리스도인은 물론이고 무신론자나 비종교인, 성소수자에게도 말을 걸 수 있는 보편적 그리스도에 대해 탐색한다. 저자는 좁은 의미의 그리스도교적 관점을 넘어서 ‘인류’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이러한 보편성은 오랫동안 종교 다원 사회로 존재해 왔고, 비종교인이나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고 있는 한국 상황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제품과 기술 발명품을 사용하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컴퓨터 게임을 하며, 같은 화폐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인류가 한 가족이 되지는 않는다. 인류 화합이나 그리스도인 일치의 과정은 단일화나 표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상호 인정과 보완, 시야의 확장, 일방성 극복을 목적으로 한다.”(166쪽)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은 1948년 체코에서 태어나 프라하 카를대학에서 사회학과 철학,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1978년 동독에서 비밀리에 사제품을 받고 지하 교회에서 활동했다. 할리크 신부의 다채로운 학력과 이력은 현대 사회 문화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독특하면서도 보편성 있는 해석을 제시했고, 199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교황청 비신자대화평의회(현 문화평의회)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버드 등 세계 여러 대학에서 초빙 교수를 지냈고, 현재 카를대학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종교 간 대화, 저술 및 교육 활동, 영적 자유와 인권 보호 증진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 2010년 로마노 과르디니 상 등 여러 저명한 상을 수상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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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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