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인터뷰한 건 9년 전이다. 20대 초반에 대극장 공연의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던 그는 이후 주요 공연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고, 타 매체에서 공연을 주로 취재했던 기자는 몇 차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본명이 ‘이정훈’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례명이 ‘제노’인 것은 지난달에야 알게 됐다. 그것도 한 수녀님의 ‘제보’로 말이다.
“군 생활을 근처에서 해서 명동성당에는 자주 왔어요. 할머니가 독실한 신자셨고, 친가, 외가 모두 가톨릭이라서 성당은 굉장히 익숙한 곳이거든요.”
명동성당에서 뮤지컬배우 윤소호(제노)씨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공연기획사나 소속사를 통해서도 아니고, ‘취재원’ 수녀님을 통해서였다. 당연히 이미 폐막한 ‘베토벤’ 공연을 홍보하는 자리도 아니건만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흔쾌히는 아니었어요. ‘나는 괜찮지만, 가톨릭평화신문도 괜찮을까?’ 걱정했죠.(웃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이 구독할 텐데, 내가 나가도 되나?’하고요. 하지만 폐가 되지 않는다면 사양할 생각은 없었어요. 유아 세례를 받고 어려서부터 가톨릭의 기운을 받고 자랐으니까요.”
매주 미사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공연 때마다 기도는 한다. 다급하면 작은 성호경이라도. 심적인 편안함을 위한 것도 있고, 소중한 시간을 내서 온 분들이 좋은 에너지를 얻어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종종 그 자리에 수녀님을 초대한다. 인천 의 한 본당에서 제대 봉사를 하던 그의 이모와 수녀님의 인연이 그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때 잠깐 본당에서 사목하셨고 원래 다양한 활동을 하시니까 이모 생각에는 수녀님이 여러 경험을 하고 교류하면 좋을 것 같다고 여기셨나 봐요. 당시 ‘베어 더 뮤지컬’에 출연했는데, 수녀님이 등장하는 공연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공연은 영화만큼 대중적이지 않다. 성소수자를 다룬 내용도 많고, 대사와 노래가 맞물리는 뮤지컬 장르 자체를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수녀님은 이른바 ‘공연 덕후’였다. 실제로 그가 ‘헤드윅’에 출연하며 조심스레 관람 의사를 물었을 때, 수녀님은 ‘미성년자 아니다’라며 흔쾌히 홀로 공연장을 찾으셨단다.
“공연 관람을 즐겼지만, 수도자의 길을 걸으면서는 좋아하는 것도 봉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다시 선물을 주신 것 같아요. 배우님은 바쁠 텐데도 항상 공연장에 잘 도착했는지 물어보시고, 사진도 찍어주세요.(웃음) 저는 배우에게 득이 되는 관객이 아닌데 감사하죠. 가톨릭 신자라는 게 알려져서 교우분들에게 많은 기도도 받고, 배우님의 선한 영향력도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곁에서 슬쩍 말을 더한 수녀님은 윤소호 배우가 공연에 몸이 불편한 친구를 초대했다고도 전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짝이었지만,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고향 대구에 가면 만나는 친구다.
“이름이 서진우(알베르토)인데, 그 친구 가족도 모두 신자였어요. 뇌성마비로 휠체어를 이용해야 했는데, 짝이라서 제가 좀 더 도울 수 있는 상황이었고, 서로 잘 지냈어요. 그게 다예요.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어요. 제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을 때 좋은 배우가 되면 좋겠다고 응원해 줬는데, 막상 공연에 초대하기는 힘들었죠. 그러다 ‘레 미제라블’을 대구에서 공연할 때 초대한 거예요.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휠체어 탄 사람이라도 보면 바로 연락해요. 제가 그 친구라면 되게 반가울 것 같고, 그 친구 웃음소리도 저를 기분 좋게 만들거든요.”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탈렌트도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무대에 서던 배우들이 다양한 매체에 얼굴을 내비치며 유명세를 타는 일이 잦아졌지만, 그저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때를 준비하는 그의 모습은 ‘순명’이라는 단어까지 떠오르게 한다.
“저에게 특별한 탈렌트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여기까지 온 건 모두 가족들의 엄청난 기도 덕분이죠. 대학 동기가 120명이었는데, 저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거든요. 배우는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붙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노력한 것에 대한 결과물은 간절히 바라지만, 배역에 합당한지 여부는 기도로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지금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작업하는 배우들은 무대에서도 열심히 했고 잘했던 분들이에요. 또 빨리 톱스타의 길로 가는 사람도 있고, 뒤늦게 유명해진 사람도 있고요. 그 그래프를 알기 때문에 주변에서 뭐라고 하면 ‘다 때가 있다, 대신 그때까지 나도 열심히 하고 있겠다!’라고 말해요.”
배우와 수녀, 기자의 화기애애한 대화는 어느덧 두 시간에 육박했다. ‘가톨릭’과 ‘공연’이라는 키워드로 각각 수년의 인연을 이어오다 갖게 된 이 색다른 만남이 신기했다. 윤소호 배우도 나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요즘 성당에 많이 못 나갔는데, 나를 부르시는 건가?’ 생각돼요.(웃음) 신문을 보는 분들도 제가 자신과 같은 종교라는 점에 새삼 반가울 수도 있고, 가톨릭이나 공연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오랜 시간 관객 앞에서, 또 여러 분야에서 연기했으면 하는데, 이 인터뷰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오늘을 계기로 신자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더 노력할게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사진=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