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은 교회사는 물론이고 유럽사,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해 이미 수많은 저서가 나와 있다. 신학과 교회사를 중심으로 종교개혁을 좁은 의미로 연구하는 저자들은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과 같은 인물과 그들의 저서에 주목하며 당시 가톨릭교회의 상황 등을 다뤘고, ‘근대 초기’에 집중한 학자들은 종교개혁이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 전반에 변화를 일으켰음을 밝혀냈다.
독일 출신의 가톨릭 교회사학자인 롤프 데콧(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신부가 쓴 「간추린 독일 종교개혁사」는 개신교 종교개혁이라는 주제에 관심 있는 폭넓은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집필됐다. 그 출발점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며, 여기에는 신학적 측면도 고려되었다. 저자는 무엇보다 ‘개혁’과 ‘쇄신’이라는 두 중심축을 기준으로 종교개혁의 전제, 정치적 상황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종교개혁은 독일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유럽 전역은 물론 서구의 모든 그리스도교 세계가 연관된 사건이었다. 가톨릭교회를 둘러싼 제방이 터지자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수많은 사람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고,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쇄신을 추구했다. 책은 핵심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16세기 종교개혁이 신앙뿐 아니라 당시 정치와 사회 전반에 일으킨 변화를 살펴본다.
“교회 쇄신을 촉진하려는 루터의 신학과 의지는 전적으로 성경의 출전에 기초했다. ‘원천으로의 회귀’를 표어로 삼은 인문주의 시대에 루터는 전거를 검토해야 하고 이 권위에 따라 기존의 모든 교회와 세속의 규정과 그 요구 사항을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개혁에 대한 이런 종류의 열망은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있었다. (중략) 그러나 루터가 예상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았던 다양한 요구가 이와 결합되었다.”(135쪽)
“종교개혁의 초기 지지자였던 하층 귀족, 농민, 그리고 ‘평민’은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도시 역시 공동 정책을 수립하지 못함으로써 추진력을 잃게 되었다. 1530년 이래로 도시는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제국의 역사에서도 어떤 독립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종교개혁의 승자는 지역 군주들이었다.”(105쪽)
종교개혁이 바랐던 전체 교회의 쇄신은 16세기에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일으킨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의 해체는 각 영토에서 새 국가들이 탄생하는 결과와 함께 교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폐회된 뒤 가톨릭교회도 더는 1500년 무렵과 같지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교회도 교의와 생활을 성찰했기 때문이다. 책은 500년 전 종교개혁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짚어본다.
글을 번역한 김영식(서울대교구 행운동본당 주임) 신부는 “우리나라에서 개신교와 가톨릭교회는 서로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며 “종교개혁의 역사를 정확히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을 논박하는 무기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교회 일치를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