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섭 작가, 마무리 작업 한창, 9월 16일 유흥식 추기경 주례 축성식 예정
한진섭 조각가가 김대건 신부 성상의 디테일이 정확히 표현되도록 작업하고 있다.
“9월이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상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이탈리아 시민들도 길에서 만나면 저를 알아봐 주시고 응원도 해주세요.”
카라라 외곽의 피에트라산타에서 한창 작업 중인 조각가 한진섭(요셉)씨와 연락이 닿았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직전인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만났으니, 꼭 8개월 만이다. 그가 막바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은 바로 ‘성 김대건 신부 성상’. 앞서 유흥식 추기경의 제안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화답으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벽감에 한국인 성인상이 최초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홍익대 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부터 카라라국립미대 조소과에서 수학했던 한 작가는 이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이탈리아 중북부 지중해 지방에서 양질의 대리석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1월에야 무늬와 크랙이 없고, 실외에서도 강하게 버틸 수 있는 따뜻한 느낌의 대리석을 찾아냈다.
한진섭 작가가 40톤 규모의 대리석 원석을 발견하고 기뻐하고 있다.
“대리석의 이름은 ‘카라라 비안코’(Carrara Bianco), ‘카라라의 흰색 대리석’이라는 뜻이에요. 3.7m 높이의 조각상을 만들려면 대략 40톤 규모의 양질의 원석이 필요한데, 그 대리석 블록을 선정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어요. 5개월이나 걸렸는데, 이후에는 이탈리아 장인들과 함께 일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우리와 달리 어찌나 느긋하게 작업하던지···.(웃음)”
하지만 조각상이 오래도록 보존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이 숙고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대건 신부가 오른손에 십자가를 들고 전진하는 형태의 초기 구상안은 벽감 안에 조각상이 완전히 들어가는 형태로 바뀌었다.
“바티칸 공식 건축가 비탈리씨와 예술 담당 잔데르씨가 ‘조각상이 수백 년 이상 안전하게 보존되어야 하는데, 팔과 손이 벽감 외부로 노출될 경우 손상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벽감 안에 조각상이 완전히 들어갈 수 있도록 양팔을 벌린 모습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한진섭 작가가 작업장을 찾은 유흥식 추기경에게 김대건 성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될 최초의 한국인 성인상을 작업 중인 한진섭 작가.
김대건 신부 성상이 설치되는 곳은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이다. 대성전 내부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과 외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대는 위치이며, 시스틴성당의 천장화를 보고 나와 쿠폴라(지붕)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곳이다. 게다가 그 주변에 프란치스코 성인이나 도미니코 성인 등 수도회 설립자들만 세워져 있으니, 갓과 도포, 영대를 착용한 한국인 성상은 가장 눈에 띄는 외형일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에서도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지 언론과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바티칸 광장에서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강론을 하셨는데, 그 소식을 듣고 이탈리아 국영방송 Rai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아직 성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완성 이후로 정중하게 미뤘죠. 앞서 유흥식 추기경님과 3명의 신부님도 작업장을 방문하셨는데, 피에트라산타 시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이 함께하며 축제의 장이 되기도 했어요. 일 티레노(Il Tirreno)라는 신문에서 대서특필하면서 이곳 시민들도 많이 격려해 주시고요.”
성상은 8월이면 완성될 전망이다. 9월 초 바티칸에 운반 및 설치되며, 현지시간으로 9월 16일 오후 3시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 뒤 축성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4m에 달하는 성상을 지상에서 4m 위의 벽감 안에 넣어야 하는데, 크레인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무사히 설치되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담대하고 자비롭고 인자한, 그러면서도 한국적인 이미지가 조형적으로 잘 표현돼서 그 뜻과 정신이 세계에 알려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