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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219)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그 맛도 그 추억도 잊을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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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추억이고,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고,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에서 그 매개체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고등어통조림’이다.

40대에 접어든 남자, 히사. 그의 삶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는 아내와 헤어졌고, 자기 이름으로 나온 변변한 책 하나 없이 대필 작가로 전전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글을 쓰고자 하지만 글은 그의 삶처럼,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노트북 앞에서 깜빡이는 커서만 바라보던 그는 어느 날, 고등어통조림을 보고 어릴 적 친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막혔던 글도 풀리기 시작한다.

“고등어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이 한 문장을 시작으로 추억이 소환된다. 추억 속 히사는 5학년. 히사는 교실 앞에서 자기가 써온 글을 발표하는 중이다. 발표가 끝나자 선생님은 감동적이라며 아이들에게 박수를 유도한다. 그 시절, 히사는 꽤나 글짓기를 잘했고, 상도 받았었다.

히사의 반에는 ‘타케’라는 아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다. 타케의 집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짓궂은 아이들은 타케의 집까지 쫓아가 집을 확인하고는 다 쓰러져 가는 집에 산다고 놀린다. 타케를 놀리며 아이들은 웃고, 타케는 그 놀림을 묵묵히 받아낸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히사의 집에 타케가 찾아온다. 자기와 부메랑 섬에 돌고래를 보러 가자는 것이다. 학교에서 따로 말을 해본 적도 없는데, 집에까지 찾아와 섬으로 돌고래를 보러 가자니. 소심한 히사는 갈 수 없다고 하지만 타케는 히사의 약점을 들먹거리며 같이 가자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리하여 히사와 타케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 모험을 통해서 두 아이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뼘 성장하게 된다.

여행의 끝에 히사는 묻는다. “왜 나랑 오자고 했어? 자전거 있어서?” 타케는 대답한다. “안 웃었으니까. 우리 집 보고 너만 안 웃었으니까.” 누군가와 친구가 되는 순간은 어쩌면 이토록 간결하고 단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고, 어렸던 소년은 자라 어느새 중년이 되었다. 어린 시절 맑았던 눈은 탁해지고 꿈은 빛이 바랬지만, 친구가 나를 위해 만들어주었던 고등어통조림 초밥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오감 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감각이 후각이라고 한다. 후각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이 미각이다. 어린 시절에 먹었던 엄마나 할머니의 음식을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고 찾곤 하지 않는가.

이 영화는 우리가 잊고 있던 친구의 의미를 깨우친다. 웃고 울다가 옛 친구를 떠올리게 만들고, 어쩌면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함석헌 시인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생각나는 밤이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집회 6,14)

7월 5일 개봉
 
서빈 미카엘라(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연출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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