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제주 메밀 생산 농가에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봄철 이상기후로 수확 전 이삭에서 새싹이 돋는 ‘수발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제주 메밀밭 900ha 가운데 1/3이 피해를 입었고 한 해 농사를 망친 농민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자연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농부들은 앞으로 우리 땅에서 농작물을 수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앞으로 소비자는 어떤 땅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모르는 수입 농산물만 먹게 될지도 모른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키운 농산물이 우리의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기후위기로 우리 땅에서 나는 먹거리가 위기에 놓인 지금, 식량주권에 대해 생각해보자.
■ 이상기후로 식량위기 맞은 대한민국
이상기후로 인해 장마, 우박, 서리 피해가 늘어나면서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 봄 냉해로 지난 5월 8일까지 총 9628ha의 농지에서 피해가 접수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약 290ha)의 33배가 넘는 규모다. 6월에는 경북, 충북, 강원 등지에 우박이 3차례 내리며 3089ha가량의 피해가 접수됐다. 여름에는 농작물의 비피해가 컸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7월, 농지 3만6000여ha가 침수됐고 가축 96만9000마리가 폐사했다. 집중호우 뒤에는 폭염이 농촌을 덮쳤고 8월까지 온열질환으로 인한 농촌지역 사망자는 9명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작물재해보험에 대한 보상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농작물재해보험 폭염 관련 보상 지급자료에 따르면 2015년에 비해 2021년 보상 지급건수는 약 133배 증가했다. 피해면적은 약 23만ha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작물의 수확량 감소, 품질 저하는 가격이 오르는 원인이 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 지난 8월 24일 국내산 사과는 전년 동기 대비 가격이 56.8 오른 5311원(1kg당)에 거래됐다. 사과뿐 아니라 배추, 무, 건고추, 토마토 등 많은 농산물 가격도 폭등했다. 배추는 전월 대비 가격이 72.8 올랐으며 무는 29.9, 건고추는 14, 토마토는 20.3가 증가했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날씨에 변수가 생기면서 농부들은 한 해 농사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수확을 앞두고 갑작스런 자연재해로 농작물을 잃기도 하고 수발아 현상으로 씨앗조차 심을 수 없는 일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22년 농가경제조사 결과,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948만5000원으로 1000만 원 이하 수준까지 급락했다. 2021년 1296만1000원이었던 소득이 1년 새 26.8나 줄어든 것이다.
올 한 해 메밀농사를 망친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은 성명서를 통해 “농민들의 삶은 이제 처참할 지경이다”라며 “봄철 이상기후로 인해 각종 작물들의 생육이 저하돼 상품가치가 없어 밭을 갈아엎고 있고 그나마 남아있는 작물들은 장마가 들면서 수확을 포기해야할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 식량주권 찾는 길은 생명농업
기후위기와 식량위기가 가속화 되면서 농민의 권리와 식량주권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엔은 2018년 총회에서 ‘농민과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선언’을 채택했고 세계식량농업기구도 2019년부터 2028년까지를 ‘국제 가족농업 10년’으로 지정하고 가족농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식량농업기구는 “지구의 농장 중 90 이상이 개인이나 가족의 노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이 전체 경지의 70~80를 경작하면서 먹거리의 80를 생산한다”며 “가족농이 세계를 먹여 살리고 지구를 보살핀다”고 밝혔다.
곡물자급률이 20에 불과한 우리나라도 식량주권 확보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제농민운동조직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가 착안한 식량주권(Food Sovereignty)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교회는 29년 전 이미 ‘외국농축산물의 수입개방과 부적절한 농업정책으로 우리 농업이 축소, 왜곡되면서 자연생태계가 빠르게 훼손되고 우리 밥상이 농약 투성이 수입농산물로 채워질 것’이라 내다보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안에 천주교 농부학교를 개설, 소농과 생태순환 농사의 중요성을 알리고 생태위기 시대에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되새기고 있다.
생명농업을 실천하는 가톨릭 농민은 900명가량. 국내 농가인구(216만5626명)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작은 노력은 조금씩 땅을 살려내고 있다. 가톨릭 농민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 외에도 토종씨앗을 보존해 종자주권을 확보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거대 종자 기업에 의해 잠식된 씨앗 시장. 이들이 개량한 HYV(고수확 품종)은 화학물질과 화학비료에 의존도가 높아 심을수록 땅을 황폐화시킨다. 전 세계 1676개 종자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몬산토의 개량된 종자가 확산되면서 인도는 토종 면화를 잃었고 멕시코도 토착 옥수수 품종의 80를 잃었다. 또한 유전자를 변형해 작물에서 씨앗을 구할 수 없거나 성장할 수 없게 만든 결과, 농부들이 매년 종자를 구입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천주교 농부학교를 수료한 김민정(크리스티나)씨는 “우리나라는 콩을 제외한 모든 농작물이 거대 종자 기업으로부터 온 것”이라며 “우리 땅에 맞지 않고 땅을 오염시키는 개량 씨앗들을 줄이고 토종씨앗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에 많은 분들이 관심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생명농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연농법은 땅의 힘을 좋게 해 토종씨앗을 잘 자라게 한 결과 한국인에게 잘 맞는 식재료를 얻을 수 있으니 결국에는 모두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희망농법”이라고 전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