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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어느 작은 마을의 이야기 /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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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이 사는 세상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두 명이 사는 세상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세 명이 사는 세상에는 세 개의 이야기가 있을까요? 한 명이 사는 세상에 하나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은 맞을지 모르지만 두 명이 사는 세상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한다고 해도 벌써 세 개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그렇게 함께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수는 대상이 늘어날수록 더 많아질 것입니다. 작년 우리나라의 인구가 5174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 큰 숫자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애환이 담겨 있을까요? 가볍게 표기되지만, 결코 그 무게는 가볍지 않은 것이 생명이 만들어 내는 무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현상을 수치화하여 상황을 파악하는 방법은 일견 편안하고 효율적인 수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령 한 성당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어야 크다고 할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높은 비율이 성사에 참여해야 활발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지 단정 지을 수 있을까요?

이기심과 욕심이 만들어 내는 세상 안에서 숫자는 위로 쌓아 올라감만을 추구할 뿐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도외시하기 십상입니다. 새로 온 신자를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고 적더라도 참여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성사에 임할 때 아름다운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에 관련된 부분도 그렇습니다. ‘규정’과 ‘죄’라는 단어로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 들어오면 구원받고 그렇지 않으면 배제된다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편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상황을 수치화하는 현상 중 하나가 아니겠습니까. 구원 가능성의 유무를 그 누가 단정 지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이미 구원에 다다랐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한 생명이 한 가정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 아이는 그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아이의 행동에 따라 그가 가족과 멀어질 수도 가까워질 수도 있겠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끝까지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논리로 편리성과 효율성이 더 부각되어 이야기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수치화의 유혹이나 규정을 이분법적으로 적용하여 판단을 내리는 것이 그 범주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배제될 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사라지고 숫자만이 남고 말 것입니다.

“혼인을 한 커플이 몇 쌍이며, 새로 태어난 아이가 몇 명이고, 이사를 온 사람이 몇 사람이더라.” 어느 큰 도시의 상황입니다. “요한이 안젤라에게 프러포즈 했고, 미카엘과 베로니카의 아이가 유아 세례를 받았으며, 토마스가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어느 작은 마을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채우는 것이 숫자가 아닌 하느님과 함께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이길 소망해봅니다.

김영주 니코메디아의 베드로 신부
제1대리구 서천동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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