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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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강좌 지상 중계-‘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10·끝)시노달리타스와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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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소장 최영균 시몬 신부)는 2022년 10월 11일부터 10회 과정으로 ‘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강좌를 열었다. 이번 호에서는 한창현 신부(모세·성바오로수도회·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가 ‘시노달리타스와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한창현(모세) 신부(성바오로수도회,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선임연구원)

‘시노달리타스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를 준비하며 처음에는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하는 데 도움 줄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을 소개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예상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수강생 입장에서 강의에 참석하고 또 다른 수강생들 질문을 접하면서, 시노달리타스는 최대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수렴하는 작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강의가 끝날 즈음 시노달리타스와 관련해 효율적인 의견수렴 과정에만 주목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시노달리타스를 진행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교회 구성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유기체로서의 교회가 어떻게 그것을 수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매우 입체적인 과정이라고는 것을 깨달았다.

시노달리타스 과정은 그 자체로 교회와 구성원들 모습을 드러내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보게 됐다.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의견수렴의 효율성만으로 시노달리타스를 바라보는 것은 시노달리타스의 본래 취지를 발현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특히 한 가지 주제 때문이었다.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면서 대부분 강의에서 공통으로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언급이 있었다. 처음에는 시노달리타스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공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와 대비되는 측면이 강조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의가 계속될수록 시노달리타스가 실현되고 있는 현장에서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와 등치시키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음을 보게 됐다.

수강자들도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시노달리타스는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다양한 구성원들 목소리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는 절차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측면을 강조한 배경에는 수렴된 의견이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한계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적 의견수렴으로 한정시키는 배경에는 사목자의 독단적 의사 결정 구조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 강연자들이 공통으로 ‘시노달리타스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점을 주목하게 됐다. 이는 단순히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교회 결정이 침해되는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적인 절차로만 국한해서 이해하는 방식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민주주의적 절차를 강조하고 싶었던 교회 구성원들은 어쩌면 기존의 교회 결정 구조의 한계를 경험하고 부정적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 차제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다 털어놓는 기회로 시노달리타스를 이해했을 수 있다. 교회 결정 구조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적 의사 표현과 수렴의 과정으로만 이해할 경우에는 시노달리타스 일부분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시노달리타스를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접근한다고 하면서,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적인 절차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다. 시노달리타스와 관련해 커뮤니케이션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상대방이 전하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진정한 소통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싶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동일한 대상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과 가치 평가가 어떻게 다른지 대화를 통해 비교하고, 그 대상에 대한 신념 체계를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한 생각과 가치 평가가 어떻게 다른지 드러내는 과정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이런 측면에서 적용해 본다면,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적 절차의 적용 기회로 생각하는 신자들과 이런 적용에 대한 우려를 하는 강연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동일한 시노달리타스에 대해서 신자들은 민주주의적인 의견 수렴 기회로 생각하고 기존 교회 결정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가치를 부여한 것일 수 있다. 반면에 강연자들은 시노달리타스를 민주주의적 의견 수렴의 기회라고 크게 생각하지 않으며, 기존 교회 결정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한 차원에서 서로의 생각과 가치가 다른지 명확히 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를 토대로 자기 생각이나 가치를 상대방의 생각이나 가치와 동일시 할 것인지 결정해 가는 과정이다.

강연자들은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연구와 시노달리타스 과정에 참여한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수강자들이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를 민주주의적 의견 수렴 차원에 한정하고 있으리라 판단하였을 것이다.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수강자들의 생각과 가치 판단이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와 동일해지길 바라는 강연자들은 시노달리타스의 기원 및 신학적 배경들을 다양한 차원에서 소개해 주었다.

개인적으로 시노달리타스를 통해 자신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공동체가 실현되기 기대하였던 이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민주주의적 절차를 강조하였다 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나누어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시노달리타스의 본래 의미와 목적이 올바로 전달되고 실현되는 것만큼이나,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삶에 대해 그리고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면서 목적지를 향해가는 모든 활동에 대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한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교회는 세상의 가치 기준과 생각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들의 고통과 불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파악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모든 활동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의를 통해 시노달리타스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다른지를 헤아리는 과정에서 그들이 바라는 교회 모습이 분명해졌다. 민주주의적 절차에만 주목하는 것은 부족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이 모이길 바라는 이들 모습을 보았다. 비록 이들이 시노달리타스를 전체적으로 보지 못한다 해도, 마음이 나누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시노달타스의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정리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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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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