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엄숙함을 처음 깨달은 건 훈련병 시절 새벽 기상 했을 때다. 그리고 육아하는 요즘 그때가 자주 생각난다. 내 아들 비오는 엄마가 출근하는 일요일이면 아빠와 아침을 먹는다. 시리얼, 사과, 우유 그리고 달걀. 이제는 제법 컸다고 조잘거리며 스스로 잘도 집어먹는다. 비오는 이제 30개월인데, 또래보다 말이 좀 느린 편이다. “아빠! 달걀!”하며 달걀을 탁탁 내려치면 나는 달걀을 까며 고민한다.
“오늘은 비오랑 뭘 하나…?”
나와 아내는 비오가 잠들면 휴대폰을 쥐고 논다. 이때가 하루 중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아닐까. 그런 작은 자유가 아쉬워 늘 피곤을 누른 채 버티다 잠이 든다. 그래서 아침 기상은 언제나 비오의 몫. 최근 1년간은 알람을 맞춘 기억이 없다.
아침을 적당히 먹은 비오는 서둘러 의자에서 내려온다. 밤 사이 헤어졌던 장난감과 놀아야 해서다. 요즘 장난감은 대부분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데, 그 크고 작은 소리들이 어찌나 소란스럽고 반복되는지. 그러나 비오는 질리지도 않고 항상 정겹게 장난감과 놀이를 한다. 얼마나 힘주어 또박또박 그네들 이름을 불러주는지 모른다, “노란색 튤-립!”, “주황색 아스크림!” 비오의 역할 놀이에 어울려 주다가 슬쩍 시간을 본다. “9시15분, 실화냐….”
요리는 자신 없어서 일요일 점심엔 항상 소고기를 사서 구워준다. 비오와 함께하는 장보기에는 두 가지 난관이 있는데, 하나는 엘리베이터이고 다른 하나는 정육점 직원이다. 마트의 큰 엘리베이터는 비오가 너무나 타고 싶어하는 ‘놀이기구’여서 비오를 떼쓰게 만들고, 정육점 직원은 고래고래 큰소리로 세일 안내를 해서 비오를 무섭게 한다.
집으로 돌아와 부지런히 점심을 먹고 나면 솔솔 잠이 온다. 양치질하고 불을 끈 뒤 커튼을 쳐주면, 응답하듯 비오가 뽀로로 친구들을 하나씩 침대로 데려간다. “루피 잘자.” 오늘은 루피와 누웠다. 그렇게 비오와 나는 두 시간 정도 달콤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낮잠을 자고 나면 아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는데, 보통 곧바로 성가대 연습을 간다. 우리 부부는 성가대에서 만났다. 육아로 바쁘다 보니 노래로 봉사하던 그 시절이 어찌나 그리운지. 그래서 아내만이라도 성가대 활동을 하고, 나는 비오와 유아실에서 미사에 참례한다. 성당에 도착하면 비오는 성모님께 조잘조잘 말을 걸며 인사를 한 뒤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 제대 앞에 선다. “예수님 안냐세요.” 성전에 들어가는 걸 무서워하던 비오는 집에 계신 십자가 예수님이 성당에도 계심을 안 뒤부터는 제 집처럼 드나든다.
하루 동안 팽팽했던 아빠의 긴장은 미사 후 엄마를 만나야 풀린다. 엄마 최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비오와 보낸 하루를 엄마에게 이야기 해주는 사이에 비오는 새근새근 잠이 든다. 잠든 비오의 얼굴을 보며 들숨을 맡아보면 달콤하다.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예수님 잘자, 성모님 잘자.”
조형진 요한 세례자
제1대리구 호매실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