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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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유아실에서 / 조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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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비오와 함께 미사 드리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좁은 유아실이 답답할 텐데, “예수님~, 성모님~”하며 옹알거리는 모습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끔 먼발치에서 청년 성가대를 보고 있으면 불현듯 마음이 복잡해진다. 유아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성찬례,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성가들….

아내와는 청년성가대 활동을 하며 만났는데, 우리는 아주 열심히 활동했었다. 노래로 주님께 기도드리는 게 좋았고, 성가로 봉사할 수 있어서 기뻤다. 신부님과 청년들의 배려로 결혼 후에도 계속 청년성가대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아들 비오가 우리에게 찾아온 뒤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비오를 돌보느라 성가대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머리로는 이미 여러 번 정리했지만, 마음은 못내 아쉬웠다. 그렇다. 이제는 청년회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찾아야 했다.

나에게 ‘청년’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색채는 아주 선명하다. 봄꽃이 지고 돋아난 여리지만 힘찬 녹색! 청년은 봄의 새순처럼 생명력이 넘치며 보는 이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20대의 나는 청년 특유의 엄격함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 금욕과 절제를 미덕 삼아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그들을 좇으려 했고, 예수님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하나하나씩 예전과 달라졌다. 침묵 속에 혼자 있기보다는 항상 아내와 함께하게 됐고, 아이가 생긴 뒤로는 항상 아이 생각만 가득하다. 특히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마저 주님께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창세 22)을 떠올릴 때마다 당황한 나를 마주하게 됐다.
“오, 주님 제발 그것만은….”

그렇다면 나는 청년의 푸르름을 잃은 것일까? 예수님은 뒷전이고, 아내와 아들만 중요해진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나는 새순에서 자라난 가지처럼 또 다른 성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녀가 생기니 비로소 하느님께서 왜 당신 모습 그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는지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되었다.

아들 비오는 기가 막히게 엄마와 아빠를 섞어 닮았는데, 고집이나 성격마저 묘하게 비슷해서 그게 너무나 신비롭고, 또 사랑스럽다. 그런 자녀를 바라보는 내 모습에서 나의 부모님을 의식하게 되고, 나아가 하느님의 사랑 또한 느끼게 된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참여해 보니 그분의 사랑을 알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이 사랑은 내 가정을 작은 교회로 지켜나갈 힘이 된다.

유아실에서 어린 비오를 품에 앉고 미사를 드릴 때, 문득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청년성가대에서 좋아하는 성가를 함께 부르지 못해도, 미사 전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도 기쁘다. 왜냐하면 새롭게 성가정을 이룬 가족이 함께 미사 드리는 모습 또한 예수님 보시기에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형진 요한 세례자
제1대리구 호매실동본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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