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버려지거나 사망하는 이른바 ‘유령 영아’ 발생을 막기 위한 ‘출생통보제’가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를 통해 의결됐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제도가 마련된 데 대해 환영했지만, 보완과 근본적 해결책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감사원은 최근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에서 2015~2022년 8년간 출산기록은 있으나 부모의 출생신고가 누락돼 이름도 없이 행방조차 묘연한 영아 약 2200명을 파악했다. 이 과정에서 6월 21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서 영아 시신 2구가 경찰에 의해 발견됐고, 이후로도 미신고 영아에 대한 유기나 불법 입양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병원이 아기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하도록 하는 법안인 ‘출생통보제’를 시행하는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일부 개정안이 의결됐다. 의료기관이 신생아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시스템에 등록하면, 심평원이 지자체에 통보하는 방식이다. 법안 공포일로부터 1년 뒤 시행된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당연히 시행됐어야 했다”면서 “영국, 미국, 호주 등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출생통보제가 우리나라에도 적용됨으로써 죄 없는 아이들이 부모의 두려움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례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변화”라고 평가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 박은호 신부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명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완책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정우 신부는 “출생통보제와 동반되는 산모의 병원 밖 출산, 낙태율 증가 등의 우려도 간과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보호출산제 또한 차질 없이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혼부모, 미성년자 등 출생신고를 주저하는 이들의 사정을 고려할 때 출생통보제는 일종의 제도적인 측면의 개선일 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라이프의사회 회장으로 생명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차희제(토마스) 원장은 “출산 장려 방안으로 보호출산제를 시행하는 동시에 낙태를 방지하는 낙태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번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보호출산제’는 산모의 신원을 보호하면서도 자녀의 유기를 막을 수 있는 산모 익명 제도다. 하지만 익명 출산으로 인해 산모의 양육 포기를 조장할 수 있고, 그 아이가 성장해 친부모를 찾을 때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맹점이 있다. 이에 박은호 신부는 “유령 영아 대부분은 부모가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하기에,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희제 원장도 보호출산제가 낙태율 증가를 완전히 예방할 수는 없는 만큼 “낙태죄에 대한 조속한 입법 추진 또한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덧붙였다.
낙태를 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현재의 낙태죄 입법 공백 상태에서는 익명 출산이라고 해도 낙태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이유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생명을 유기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현 상황에 대해 “생명존중의 문화 확산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정우 신부는 “부모에게 찾아오는 자녀를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여기지 않는 안타까운 세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이는 사랑과 환대 속에 태어날 권리가 있으며, 우리는 성과 생명, 사랑을 통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인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은호 신부는 “존재하지만 (출생신고서상) 존재하지 않는 유령 영아들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혼인과 가정의 중요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는 종교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며 “생명 존중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현재 출생신고 의무는 오직 부모에게만 있다.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도 형사 책임을 묻지 않고, 신고 기한 1개월이 넘으면 과태료 5만 원을 부과하는 데 그치고 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6월 28일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확인된 임시신생아번호를 통해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아동들의 소재ㆍ안전을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그 사이 신원이 파악된 영아들을 제외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2123명의 소재와 안전 확인에 만전을 기하되, 일회적인 조치에 그치지 않고 모든 아동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더욱 촘촘히 보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