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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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 노래한 시인, 하늘나라 주님 앞에 ‘감사하다’ 외치리라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22) 천상병 시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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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시인과 아내 목순옥. 시인의 아내는 몸도 마음도 약한 남편을 평생 보살피며 함께 했다.


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천상병은 술을 무척 좋아했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술을 마셨다. 시인, 소설가, 평론가와 어울려 다니면서 마셨다. 술 중에서도 막걸리를 제일 좋아했다. 막걸리를 예찬하는 시를 지을 정도였다. 그는 막걸리만 마시고 산 적이 있었다. 막걸리가 밥이었다. 식사를 거부하고 곡기를 일절 끊고 오직 막걸리만 마셨다. 막걸리는 한 시간에 한 잔씩 시간과 양을 정해 놓고 정확히 마셨다. 그렇게 사니 간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수십 일 동안 내리 설사만 하였다. 배가 임산부의 배같이 부풀어 올랐다. 발도 퉁퉁 부어올랐다. 병명은 간경화였다.

종합병원에서 치료가 시작되었다. 설사약을 복용했다. 하루에 기저귀를 40장씩 갈았다. 배가 차츰 가라앉았다. 그런데 온몸에 심하게 두드러기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가려워서 북북 긁었다. 긁으면 상처가 났고, 피가 줄줄 흘렀다. 진물도 흘러내렸다. 천상병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웠다. 마치 이집트 미라 같았다. 처참한 모습이었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했다. 천상병도 자신이 죽으면 춘천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수녀님이 신부님을 모셔 와 종부성사를 주었다. 그런데 정말 친구들 말대로 그는 불사신처럼 다시 살아났다.

천상병의 술에 대한 일화는 끝이 없다. 그는 대학 시절, 소설가 한무숙 집에서 식객으로 있었다. 한무숙은 문학청년을 좋아해 방 하나를 제공했다. 어느 날 밤에 잠은 안 오고 술 생각이 났다. 낮에 얼핏 본 안방 화장대 위의 양주병이 눈에 어른거렸다. 한무숙 부부가 잠든 안방에 살금살금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화장대 위를 더듬어 양주병을 잡아 들고는 얼른 나왔다. 그러곤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갑자기 향수 냄새가 나고 속이 메슥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양주병인 줄 알고 들고 나온 것은 한무숙이 아끼던 향수였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천상병이 부산시장 공보비서로 일할 때였다. 시장 부인이 중매를 서겠다고 했다. 그래서 선보는 자리를 마련해 천상병을 초대했다. 천상병은 결혼 상대자에겐 관심 없고 오직 화려한 술상에만 관심이 있었다. 매번 술만 실컷 먹고 나오곤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니 시장 부인도 천상병의 속셈을 알아차리고는 그다음부터는 일절 중매를 서지 않았다.


 
왼쪽부터 이외수, 천상병, 중광 스님.



이외수, 중광 스님과의 인연

천상병은 하늘나라에서 제일 높으신 분은 하느님이고, 둘째는 예수님, 셋째는 가브리엘 대천사, 넷째는 천사들이라고 했다. 하느님과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가브리엘 대천사는 우리 인간 세상에 있다고 했다. 그 가브리엘 대천사가 바로 소설가 이외수와 중광 스님이라고 했다. 이외수는 행동거지나 모습이 자신과 비슷하고, 외로운 모습도 마음에 들고, 세수를 일주일 동안 하지 않는다는 것도 자신과 닮아 좋아했다.

춘천의료원에 간경화로 입원했을 때 이외수가 찾아왔다. 천상병은 그를 보자마자 “이외수야! 너는 내 동생이다”라고 했다. 그 후 이외수가 대마초 사건에 휘말린 뉴스가 나오자 천상병은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이외수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드렸다. 그랬더니 이외수가 풀려났다. 이외수는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돕겠다고 중광과 함께 시화집 「도적놈 셋이서」라는 책을 만들었다. 제법 많이 팔렸다. 그래서 들어온 인세로 ‘귀천’을 운영하며 지은 빚을 갚을 수 있었다.

천상병이 중광을 만난 곳은 광주에 있는 한 도자기 가마에서였다. 그는 검정 고무신에 누더기를 입고 얼굴에 흙이 묻은 모습으로 천상병의 손을 잡고 반가워했다. 천상병은 중광을 ‘보살님’이라 불렀고 중광은 천상병을 ‘도사님’이라 불렀다. 중광은 그림을 그릴 때 혀를 이리저리 돌리며 어린애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 천상병은 중광의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좋아했다. 춘천의료원에 입원해 있을 때, 중광은 문병 와서 베개 밑에 20만 원을 넣고 갔다. 당시로는 매우 큰 돈이었다. 중광에게 용돈을 달라고 하면 선 듯 용돈을 주었다. 누더기를 걸치고 가슴에는 고장 난 시계를 달고, 머리에는 울긋불긋한 장식의 모자를 쓴 중광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천상병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천상병은 아내도 가브리엘 대천사라고 했다. 여섯 살짜리 아기로 마음도 몸도 약한 불쌍한 남편을 평생을 보살펴준 ‘착한 대천사’라고 했다. 하느님이 이런 착한 대천사를 자신에게 붙여주었다고 늘 고마워했다.

 
천상병 캐리커처



하늘로 돌아간 시인

천상병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의 깊은 신앙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시가 바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는 ‘귀천(歸天)’이다. 시인은 하늘에서 아름다운 이 땅으로 소풍을 와 기슭에서 종일 놀다가 어느덧 석양이 물들며 구름이 그만 놀고 어서 오라고 손짓하면 하늘로 돌아가 하느님께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말하겠노라 했다. 천상병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이 세상에 사는 것을 어떻게 하늘에서 소풍 온 것으로 비유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두렵고 무서운 죽음을 이토록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었을까. 종교적 영성이 하늘에 가 닿지 않으면 이런 시는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시에 위로받고 힘든 삶을 이겨내며 하늘나라를 꿈꾸며 살고 있다. 시인 신경림은 ‘귀천’을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했다.

천상병이 제일 가깝게 믿고 의지한 분은 하느님이었다. 그는 “늘 하느님은 나하고 함께 계시다”고 했다. 하느님은 자신의 손짓, 발짓, 몸짓을 일일이 지켜보시고 마음까지 읽어내서 잘못하면 벌을 주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는 하느님을 언제 어디서나 찾았다. 하느님을 부르며 주거니 받거니 혼자서 이야기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맛있는 거를 주셔서”, “하느님, 글을 쓰게 해주시오” 등등…. 천상병은 사람들에게 늘 자신은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서 이 땅으로 잠시 소풍을 나온 것이고, 하느님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천상병은 하느님을 매일 그렇게 부르면서도 또한 시몬(深溫)이라고 세례까지도 받았는데도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주변에서 성당에 가라고 하면 “하느님은 거기 안 가도 늘 나하고 있는데 뭐 할라꼬”라고 했다. 하느님은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며 자신의 ‘막강한 빽’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꼭 천국에 가기로 되어 있다고 아이처럼 자랑했다. 그러면서도 천상병은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라고 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고 고통받게 했으니 얼마나 무서운 분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늘 “하느님, 용서해 주이소”를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술로 인해 병을 얻은 것도 하느님이 벌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상병은 그해 가을부터 겨울까지 내내 집에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날씨가 추워서 외출할 수 없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인사동 ‘귀천’에 가겠다고 했다. 그 봄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천상병은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밥 먹는 모습이 평소와 달랐다. 너무 급하게 먹었다. 또한 많이 먹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모가 물 주전자를 주며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그런데 주전자를 받아 들고 벌컥벌컥 마시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하느님이 그만 놀고 어서 돌아오라고 부르신 것이었다.



참고자료 : ▲천상병 「천상병 전집」 (산문). 평민사. 2018. ▲천상병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도서출판 강. 1990. ▲천상병 「천상병 시집 새」 도서출판 답게. 1992 ▲목순옥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 청산. 1993 ▲신경림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우리교육. 1998. ▲백형찬 「예술혼을 찾아서」 서현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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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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