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28) 정채봉 프란치스코 (하)
정채봉 작가가 김수환 추기경의 고향인 대구시 군위를 찾아 김 추기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김수환」
정채봉(프란치스코, 丁埰琫, 1946~2001)은 전남 승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일본으로 가 소식을 끊었다. 할머니는 어린 오누이를 힘들게 키웠다. 홀로 농사를 지었고, 읍내에서 풀빵 장사와 국수 장사도 했다. 그런 할머니는 정채봉이 군에서 제대하자 세상을 떠났다. 손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날, 할머니에게 간절히 말했다. “할머니, 내가 은혜를 갚을 수 있게 조금만 더 살아요.” 그런 손자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정채봉은 소년 시절에 늘 혼자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들도 적었다. 혼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날이 많았다. 그 외로움이 소년을 후에 동화작가로 키웠다. 중학교를 마치고 명문고에 합격했다. 그런데 돈이 없어 등록할 수가 없었다. 그때 중학교 때 선생님의 도움으로 학비를 전액 면제받을 수 있는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온실 관리를 책임졌다. 그런데 나무를 돌보는 일보다는 책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가 나무에 물 주는 것을 잊어 꽃나무가 말라 죽게 되었다. 이때 갑자기 나타난 선생님이 화를 내며 “네 이놈, 이 아우성이 들리지도 않느냐?” 하면서 정채봉을 따끔하게 혼냈다. 그 후로 온실 당번을 그만두고 도서실 당번을 맡게 되었다.
「어린왕자」로 동화 세계에 빠져
도서실 당번은 그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도서실에서 세계고전을 비롯해 모든 책을 읽었다. 또한 친한 친구에게 매일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수백 편의 편지는 작가로서 습작의 시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동국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3년 때, 일간지 신춘문예 동화 부문과 소설 부문에 응모했다. 동화에서 ‘꽃다발’이 당선되었다. 소설은 최종심까지 올라갔으나 떨어졌다. 당시 동화는 그렇게 인기 있는 문학 장르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내용이겠거니 하고 누워서 읽었다. 점점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무릎까지 꿇어가며 책을 읽었다. 동화가 이렇게도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정채봉은 「어린왕자」를 계기로 다시 동화로 뛰어들었다.
이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다. 아이도 태어났다.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나 작품만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는 힘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선배의 소개로 ‘샘터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은 ‘글로 먹고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회의가 들었다.
정채봉은 가족과 함께 가톨릭에 입교했다.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순천 선암사에 줄곧 다녔다. 불교는 그의 정신적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이후 그가 쓴 동화와 수필 그리고 시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들어간 글이 많이 등장했다. 특히 서울대교구 주보 ‘간장종지’에 간결하고 함축적인 메시지를 써서 신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저 산 너머’라는 장편 소설로 썼다. 또한 생각하는 동화 ‘멀리 가는 향기’는 독자들로부터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단행본으로 발간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물에서 나온 새」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고, 「오세암」으로는 새싹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로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채봉과 어린 자녀들.
작고 고마운 인연들 속에서
정채봉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신문을 배달했다. 그때 마음이 아름다운 두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우체부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마을에서 우편배달을 20년 넘게 했다. 집집의 가정사를 훤히 알고 있었다. 정채봉은 신문을 배달하다가 무서운 개가 짖는 바람에 그 자리에 멈춘 적이 있었다. 그때 우체부 아저씨가 신문을 대신 배달해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무서워하면 더욱 깔보는 것이 개의 습성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유 있게 대하거라. 그러면 더러 기가 죽는다.” 우체부 아저씨가 들려준 그 작은 지혜는 정채봉이 살아가면서 큰 지혜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도장방 아저씨였다. 그 아저씨는 한쪽 다리가 없었다. 대서소 한쪽 구석에서 도장을 새기는 일을 했다. 신문 배달하던 집이 대금도 주지 않고 이사를 가버려 정채봉은 속상했다. 그럴 때 도장방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훈훈한 마음으로 사는 거야”라고 다독거려 주었다. 후에 이 말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장방 아저씨는 정채봉을 서점으로 데려가서 시를 읽어주었다. 그래서 윤동주의 ‘서시’와 이육사의 ‘광야’도 알게 되었다. 또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아예 외우게 되었다. 정채봉이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두 아저씨는 기뻐하며 격려해주었다. 특히 도장방 아저씨는 입학 기념으로 도장을 파서 선물해 주었다. 그 나무 도장은 중고등학교 입학원서에, 대학 입학원서에, 이력서에, 혼인 신고서에, 아이 출생 신고서에, 작품집 인지에 찍은 귀한 도장이 되었다.
삶을 너무 사랑했지만
정채봉은 동국대 국문과 겸임교수로 또한 평화방송TV 진행자로 정력적인 활동을 했다. 그러던 그에게 병이 찾아왔다. 그에게는 B형 간염이 있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았다. 정기 검진을 앞두고 오른쪽 하복부에 통증이 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체중이 1㎏씩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검사를 했더니 간암이었다. 입원 전날 밤에 가족들에게 당분간 병원에 나타나지 말라고 했다. 슬퍼만 하다가는 병을 극복할 힘을 일찍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입원해서는 병실 앞에 ‘면회 사절’이란 명패를 걸었다. 명패 밑에 면회를 사절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적어놓았다. 그러고는 ‘면회 사절’이라는 시를 지었다. 시에서 면회를 ‘오지 마라’고 세 번씩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죽음을 맞이하면 나의 수의는 너의 사랑’이라고 했다. ‘아직은 절망하기 싫다’고 하며 ‘면회를 사절할 수 있는 것도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채봉은 삶을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죽을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 병실에 누워있는 정채봉의 야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리다.
세밑 아침이었다. 정채봉은 병원 밀차에 누워 수술실로 향했다. 어린 딸이 슬리퍼 두 짝을 들고 따라왔다. 간호사가 딸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신발을 신을 필요가 없을 거예요. 갖다 두고 와요.” 그 말을 들은 정채봉은 슬펐다. 신발을 영영 신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정채봉은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입에는 마우스가 물려 있고, 링거와 고무호스는 팔과 코 그리고 옆구리에 꽂혀 있었다. 일곱 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이었다. 목이 말랐다. 손짓으로 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환자에게 물을 뿌려 주라’고 했다. 그러자 물은 튜브를 통해 곧바로 몸속으로 들어왔다.
기나긴 투병 생활은 정채봉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병이 깊어가면서 쓴 것이 「눈을 감고 보는 길」(수필집)과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동화집)이다. 뒤의 책으로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소감을 말했다.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그렇고 마음이 그러하며, 동심이 또한 그렇지 않습니까? 문학인의 사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정채봉은 죽음을 향해가면서도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시집)를 완성했다. 정호승은 이 시집을 ‘삶과 죽음의 세계를 넘나들었던 한 동화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의 한 결정체’라고 했다.
정채봉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영혼을 맑게 해 하느님께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망대로 이루어졌다.
참고자료 : ▲정채봉 「물에서 나온 새」 샘터. 1983 ▲정채봉 「그대 뒷모습. 제삼기획」 1990 ▲정채봉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현대문학북스. 2000 ▲정채봉·정리태 「엄마 품으로 돌아간 동심」 샘터사. 2002 ▲정채봉 「오세암」 샘터사. 2003 ▲정채봉 「눈을 감고 보는 길」 샘터사. 2006 ▲정채봉 「저 산 너머」 리온북스. 2018 ▲정채봉 첫 「마음」 샘터. 2020 ▲법정 「텅빈 충만」 샘터사. 2001 ▲가톨릭평화신문(2001.1.14) ‘맑은 영혼으로 하느님께 돌아가’ ▲가톨릭신문(2001.1.21) ‘고(故) 정채봉 씨의 삶과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