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2025년 5월 열린 콘클라베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새 국면에 들어섰다. 추기경단은 로버트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하며, 바티칸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 레오 14세를 맞았다. 책은 놀라움과 기대 그리고 적잖은 긴장이 교차했던 그 역사적 전환의 현장을 지켜본 기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기간 바티칸 특파원으로 20개국 이상을 동행 취재한 저자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25년 콘클라베를 단순한 교황 교체가 아닌, 가톨릭교회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제시한다. 여러 추기경이 “적어도 60년 만에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평가한 이번 콘클라베가 왜 결정적이었는지를, 그 배경과 맥락을 통해 치밀하게 풀어낸다.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서 ‘차기 교황을 이해하기 위한 전사(前史)’로서 프란치스코 시대를 조명한다.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는 말로 상징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노선, 가난한 이들과 주변부를 향한 교회의 방향 전환, 그리고 시노달리타스라는 ‘함께 걷는 교회’의 실험이 어떤 열매와 갈등을 동시에 남겼는지 균형 있게 짚는다.
2부는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선거’로 불리는 콘클라베의 내부를 다룬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부터 콘클라베 준비 과정, 시스티나 성당의 문이 닫힌 뒤 벌어졌을 법한 논의와 긴장까지, 기자가 확보한 정보에 콘클라베 규정과 역사적 관행을 결합해 영화보다도 극적인 장면들을 재구성한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동안 추기경단의 구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남수단·브루나이·파푸아뉴기니·통가 등 그간 주변부로 여겨졌던 지역의 목소리가 어떻게 중심으로 들어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3부에서는 레오 14세 교황의 삶과 정체성을 입체적으로 살핀다. 시카고 남부의 다문화 환경에서 성장한 소년, 페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선교사이자 사목자, 그리고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서 교회 행정을 경험한 인물. 저자는 이 서로 다른 경험들이 레오 14세를 ‘분열을 완충하는 인물’로 형성했다고 분석한다. 미국 국적이라는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도회 영성, 남반구 선교 경험,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해하는 감각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같은 미국인 기자라는 위치를 살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레오 14세 교황의 유년기와 사목 여정을 주변 인물 인터뷰와 개인적 취재 경험을 통해 전한다.
책은 프란치스코와 레오 14세를 ‘요한 23세?바오로 6세’ 이후 60년 만에 다시 등장한 중요한 조합으로 놓고, 두 교황 사이의 연속성과 변화를 통합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교황 소개서들과 차별성을 지닌다.
즉위 미사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불화, 증오와 폭력, 편견과 다름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언급하며, “지금이야말로 사랑할 시간”이라고 선포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분열의 시대에 교회가 내놓은 응답으로 읽힌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교황 방한을 앞두고, 이 책은 프란치스코의 유산이 어떤 모습으로 다음 교황에게 계승됐는지, 그리고 한국교회가 세계교회 안에서 어떤 맥락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는 하나의 참고 점을 제공한다. ‘글 쓰는 신부님’ 방종우 신부(야고보·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의 번역과 상세한 주석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