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ROTC 출신 육군 소위 한서진은 사살된 북한 장교 시신에 십자가를 얹고 명복을 빌어준다. 이 죄로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위반한 빨갱이로 몰리게 되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어떠한 항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빨간색 인간’으로 매도된 채 삶의 이력과 가족들마저 잃는 억울한 상황이 되자 그는 오직 복수만을 생각하는 존재로 변질된다.
국내 최초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김홍신(리노) 작가가 6년 만에 펴낸 신작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는 냉혹한 1970년대를 거친 한 남자의 일대기다. 한서진의 딸 자인이 아버지의 유고를 읽고 그 삶을 추적해 가는 액자식 소설 형식으로 쓰였다.
주인공 한서진은 결론적으로 자신의 삶을 깊은 수렁에 빠트린 두 남녀에 대한 증오심마저 모두 거두는 모습을 보였다.
복수의 완성이 아니라 이념의 압제를 물리치고 사랑의 아픔을 넘어서는 결말은 숭고하고 성숙한 ‘사랑과 용서’의 힘을 보여준다. 적군의 죽음에도 애도를 표하던 인류애는 고문을 거치며 실종되고, 분노와 좌절로 무모한 범행조차 서슴지 않던 주인공이 용서라는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은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인이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의 사연을 깨닫고 출생의 아픔을 넘어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가 이뤄내는 화해다.
주인공 한서진이 처한 상황은 우리 역사 속 비극의 단면이다. 올해 2023년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70주년이지만, 여전히 첨예한 분열과 대립이 난무한다.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나 집단을 낙인 찍고 다시 이를 복수로 되갚는 폭력적인 모습도 마찬가지로 비일비재하다. 이런 시대에 이 작품은 노장 소설가가 던지는 화해의 가치에 대한 절실한 메시지다.
“거친 삶과 시대의 아픔 속에 써 내려간 한 사람의 일대기이자 스러져간 모든 이름들의 연대기”라고 소설을 설명한 김홍신 소설가는 “무너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지키려는 인간 본능을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