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단편을 영화화한 작품 ‘해리건 씨의 전화기’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년 크레이그(제이든 마텔 역)가 은둔 생활을 하는 노령의 억만장자 해리건(도날드 서덜랜드 역)과 뜻밖에 친구가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죽은 이에게서 스마트폰으로 답장이 오는 미스터리한 설정 때문에 스릴러영화로 구분하지만, 이 영화는 어릴 적에 돌아가신 엄마를 잊지 못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부담될까 봐 내색하지 않는 사려 깊은 주인공 소년과 시끄러운 도시를 피해 작은 마을에 들어와 큰 저택에서 홀로 노후를 보내고 있는 해리건의 우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크레이그는 해리건에게 책을 읽어주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사이 깊은 유대감을 느끼고 그를 멘토로 의지하게 되면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책 읽는 일이 즐거워진다. 크레이그는 해리건에게 매주 받던 복권이 당첨되어 감사의 표현으로 아이폰을 선물하고 스마트폰의 기능을 알려준다. 실시간으로 주식 현황을 보는 것부터 신문보다 하루 빠르게 뉴스를 볼 수 있고, 언제든 주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점에서 해리건은 놀라워하지만, 무분별한 정보라든지 가짜 뉴스, 악플 등의 부작용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통찰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해리건이 예견한 “만약 인터넷 서비스가 갑자기 중단되면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지난 10월 중순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데이터 센터의 화재로 카카오 관련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자 무차별적으로 날라 왔던 메시지와 메일이 끊겨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과 함께 복구 시간이 길어지자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우리 일상에 지나치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메시지는 망자와의 소통에 관한 것이다. 해리건이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크레이그는 이별을 슬퍼하며 장례식에서 관에 누워있는 해리건의 재킷 속에 둘의 추억이었던 휴대폰을 넣어준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사업해서 성공을 거둔 해리건과 디지털 시대에 익숙한 어린 크레이그가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며, 해리건이 좋아하는 곡 ‘Stand By Your Man’을 서로의 벨소리로 지정할 정도로 가까워졌으니, 해리건의 부재는 크레이그에게 심리적 위기가 될 수밖에 없다. 크레이그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감당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자 해리건에게 전화해 고백한다. “죽은 사람은 함부로 부르는 게 아니다”라는 친구 할머니의 조언을 떠올리며 혼란스러워하지만, 영매가 죽은 사람과 소통하는 주술적 행위가 아니라 해리건이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대화하듯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답장을 받는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크레이그의 간절한 마음이 닿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보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 우리는 11월 위령 성월을 맞아 돌아가신 분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드려야겠다.
10월 5일 넷플릭스 공개
이경숙 비비안나
가톨릭영화제 조직위원
가톨릭영화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