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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향기 with CaFF] (186)알카라스의 여름

농지 빼앗기고 새 미래를 찾는 대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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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길목에서 만난 ‘알카라스의 여름’은 추운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쥔 느낌이다. 쓰고 달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영화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에 살며 복숭아 농사를 짓는 솔레 가족의 이야기다.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 아들에 이르기까지 3대째 이어온 농장을 곧 돌려주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친구로부터 땅을 사들이면서 계약서를 만들지 않았다. 그들에겐 팔면 판 것이고, 사면 산 것이었다. 말이 곧 법이고 진실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친구는 이미 고인이 되고 그의 아들은 땅을 내어놓으란다.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씁쓸히 뱉는 할아버지의 ‘친했는데…’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복숭아 추수를 끝으로 떠나야 하는 현실이 너무 슬프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의 실수(?)가 안타깝지만 가장 마음이 아플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묵묵히 일한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면서 웃기도 하고 놀기도 한다. 철없는 어린아이들은 주변의 온갖 도구들을 가지고 큰소리를 내며 여전히 즐겁다.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일하며 삶을 누리던 이들이 땅을 내어놓고 공장에 스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아득하다. 복숭아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후 그곳의 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들으면서 ‘내가 이제 잡역부가 되어야 하느냐’는 아버지의 절규. 무엇을 어디에서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그만큼의 생각과 넓이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환경을 만들지만, 환경 역시 사람을 만든다.

급히 농장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남성들과 달리 할머니, 어머니, 딸도 분주하지만, 상황에 대한 받아들임이 좀 더 여유롭다. 현실성이 떨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여성 특유의 유머로 벌어진 상황에 당황스러움을 털고 새로운 곳에서 어찌 살 것인지 말을 건넨다.

사노라면 예기치 않은 고통이 따른다.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턱 믿었다가 쿵 떨어지기도 한다. 어찌할 것인가? 솔레 가족이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가 있다. 많은 경우, 어려움이 생기면, 그 고통의 무게를 전가할 대상을 찾느라고 애를 쓴다. 분명 누군가의 책임이 있지만, 그보다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모색하며, 함께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때 가족은 큰 힘이다. 결코, 화살을 겨누어서는 안 된다.

‘알카라스의 여름’에 올해 황금곰상을 선사한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베네치아, 칸영화제와 함께 유럽 3대 국제 영화제로 알려져 있다. 이념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작품에 힘을 실어주는 영화제로, 이 영화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농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상황, 자영업 농군들을 일꾼으로 전락시키는 사회적 문제가 잘 드러나 있다. 대가족의 풋풋한 정서를 통해 각자의 향수도 느낄 수 있는 귀한 영화이다. 11월 3일 개봉



손옥경 수녀(성바오로딸수도회,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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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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