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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요한 23세 교황이 1961년 12월 25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을 공표하는 문헌에 서명하고 있다. |
지난 10월 11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여전히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21세기를 위한 21번째 보편 공의회’라고 표현한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실인 교회 쇄신과 현대화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공의회 과정에서 드러난 성령의 이끄심을 간추려 정리했다.
2000여 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신앙의 중추가 된 위대한 공의회들은 그 중요성을 깨닫기까지 수세기에 걸친 시간이 필요했지만, 교회와 신자들의 삶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20세기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삶 전 영역을 ‘현대화’(aggiornamento)하는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모든 민족이 라틴어가 아닌 자기 언어로 미사를 봉헌하게 됐다. 복음 선포와 교회 성장을 위해 성직자와 평신도가 협력하고 봉사하게 됐다. 또 교회 일치를 위해 갈라진 형제들과 대화하고, 타 종교를 이웃 종교로 포용하게 됐다. 아울러 세상을 멀리해야 할 부정적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복음화의 대상이 됐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쇄신에 대한 책임, 현대 사회의 적응에 대한 사명, 갈라진 형제와 이웃 종교에 대한 이해, 모든 이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연대성과 관심 등을 수용하고 표방했다.
공의회 소집과 준비(1958~1962)성 요한 23세는 교황이 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1958년 1월 25일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전례를 주례한 후 새로운 보편 공의회 소집을 발표했다. 새 공의회 소집 이유에 대해 교황은 “영혼의 선익을 증진하고 현대의 영적 필요에 분명하고 확고하게 상응하는 새로운 교황직을 수행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냉전으로 핵무기 위기가 세상을 압도하던 당시 교회 또한 매우 긴급한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이 ‘쇄신의 때’라면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황은 이 공의회가 ‘일치 공의회’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평신도들과 갈라진 교회 공동체의 대표들을 초대했다.
교황은 1960년 6월 5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자의교서 「하느님의 드높으신 뜻」을 통해 새 공의회 이름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고 공식 발표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식이 1962년 10월 11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장엄하게 거행됐다. 전 세계 2449명의 주교가 참여했다. 한국 교회에서도 노기남 대주교를 비롯한 주교 9명이 참가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어머니이신 교회가 기뻐합니다”(Gaudet mater Ecclesia)라는 인사말로 개막 연설을 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모든 이를 위한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온화하고 인내하는 어머니, 다정하고 자비로운 교회의 얼굴을 증거하길” 희망했다. 그래서 그는 개막 연설에서 “새 공의회는 인류 사회와 인류의 미래와 연관된 교회의 가능성을 폭넓고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며,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와 일치를 이루시는 장엄한 행사”라고 규정했다. 또 “공의회의 빛으로 교회가 쇄신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통하여 영적으로 풍요롭게 성장하고 담대하게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교황은 “단죄가 아니라 자비의 마음으로 교리의 타당성을 보여 주어 현시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사목적 성격의 공의회를 진행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1963년 6월 3일 위암으로 선종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고 개최했지만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했다. 후임으로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선출됐다. 이처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서로 다른 두 교황이 재임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성 요한 23세는 공의회를 결정하고 시작했으며, 성 바오로 6세는 이를 받아들여 지속시켰으며 마침내 완결지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두 4회기로 진행됐다. 공의회 준비 단계에서 12개 준비위원회가 담당 분야별로 초안을 마련했지만 제3회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의안은 16개로 늘어났다. 이 중 제2회기에서 「전례 헌장」과 「사회 매체 교령」이, 제3회기에서 「교회 헌장」 「일치 교령」 「동방 교회 교령」이 반포됐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5년 10월 28일 장엄 공개회의에서 「주교 교령」과 「사제 양성 교령」 「수도 생활 교령」 「그리스도인 교육 선언」 「비그리스도교 선언」을, 이어 11월 18일 「계시 헌장」과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을 공포했다. 「계시 헌장」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가 “오직 성경만!”을 주장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맞서면서 다소 등한시했던 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 ‘성경과 성전’이 계시의 원천임을 천명했다.
교황은 1965년 12월 7일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사제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을 반포했다. 교황은 이날 역사에 남을 또 하나의 선언을 했다. 동ㆍ서방 교회 결별의 결정적 원인이 됐던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공동 선언을 바티칸과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에서 동시에 발표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역점을 둔 ‘교회 일치’를 위한 뜻깊은 선언이었다.
폐막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5년 12월 8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주례한 장엄 미사로 폐막했다. 교황은 폐막 미사 후 공의회에 참가한 교부들 이름으로 국가 지도자들을 비롯해 사상가와 학자, 예술가, 여성, 노동자, 가난한 이와 병자와 고통받는 모든 이, 젊은이 등 전 세계 모든 이에게 메시지를 발표했다. 성 바오로 6세는 교황 교서 「성령 안에서」(In Spiritu Sancto)를 통해 공의회의 모든 결정에 대한 교황의 완전한 승인을 다시 표명하면서 모든 신자가 이를 경건히 준수하도록 요구했다.
의미와 평가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20차례 열린 이전의 보편 공의회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의회였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새로운 성령 강림 대축일’ ‘새로운 오순절’이라고 표현했다. 성 요한 23세는 교회가 새로운 세상을 마주 대하고, 만민 평등과 가난, 정의, 평화, 그리스도인 일치와 같은 신앙의 유산들을 세상에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만남’이 되어야 한다고 희망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의 바람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쇄신하여 현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사목적이고 현대의 감각으로 새롭게 제시하면서, 교회가 현대인들에게 일관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주력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새롭게 인식했다. 교회의 법적 제도적 측면보다 성사적 차원을 우선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위계적 교계 제도보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 보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하느님 자녀로서 똑같은 품위를 누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친교의 공동체로 이해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와 세상 안에서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갈라진 형제들과 이웃 종교에 대해서도 이해를 달리했다. 단죄하고 배척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대화하고 협력하는 모습으로 돌아섰다.
4개 헌장과 9개 교령, 3개 선언으로 이뤄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6개 문헌은 이전 문헌들에서 볼 수 있는 제재나 단죄, 처벌 같은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시대의 도전과 요구에 대한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한 총체적인 교회의 답변으로 일반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현대화’ 곧 ‘아조르나멘토’이다. 성 요한 23세는 아조르나멘토를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방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런 정신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선포하는 신앙 진리를 새롭게 이해했다. 진리 자체는 불변하지만, 그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시대와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돼야 함을 선포한 것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