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11) 충북대 수의과대학 김선아(실비아) 교수
▲ 동물행동의학 전문의 김선아 교수가 진료실에서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 루피를 안고 있다. |
“전 세계 100명도 안 되는 전문의! 국내 보유국이 되다니! 축하합니다!”
“합격 너무 축하해요.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워요.” “한국 최초의 행동학 전문의 축하드립니다!”
충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속동물병원 김선아(실비아) 임상교수가 최근 자신의 SNS에 미국 동물행동의학 전문의 자격시험 합격 소식을 알리자 축하 댓글이 줄을 이었다. 김 교수는 세계 최고의 수의과대학으로 꼽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UC DAVIS에서 동물행동의학 전문의과정(레지던트)을 수료하고 10월 22일 전문의 시험 합격 메일을 받았다. 국내 최초다. 2017년 단 한 명만 선발하는 전문의 과정에 뽑혔고, 과정 마지막 해인 2020년엔 올해의 레지던트 상을 받기도 했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수의사이자 국내 동물행동의학의 선구자인 김선아 교수를 만났다.
보호자가 행복할 수 있어 보람 느껴
김 교수는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충북대 부속동물병원 세종분원에서 진료를 보고 있다. 하지만 전국 각지에서 보호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데리고 그에게 온다. 동물행동의학 전문의는 국내에선 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동물행동의학은 아주 간단하게 얘기해서, 정신과예요. 사람으로 치면, 소아정신과하고 가장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좀 이상하다 싶으면 아이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가잖아요. 의사는 아이의 행동을 살펴보고 부모와 상담하고요. 행동학 수의사도 마찬가지예요. 반려동물의 이상증세를 보고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니까요.”
김 교수는 “낯선 사람에게 심한 경계심을 보여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거나, 심지어 보호자를 공격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삶은 정말 너무나 힘들다”면서 “그런 개와 고양이를 치료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고 행복해지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조금 전에 진료를 봤던 개도 보호자를 정말 심하게 물어서 저에게 왔거든요. 상황을 보니 개가 구조소에서 왔는데 예전에 전염병을 앓아 신경계에 문제가 있는 거였더라고요. 겁도 먹고 전염병 후유증으로 신경계 문제가 있으니 행동 조절이 안 돼 보호자를 무는 거였어요. 병원에서 당장 치료가 필요한 개인데 보호자가 그동안 훈련소만 다니셨더라고요.”
▲ 진료실의 김선아 교수 |
진단과 치료는 훈련과 달라
그는 보호자들이 반려동물의 이상행동에 병원이 아닌 훈련소부터 찾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반려동물의 행동을 훈련을 통해 고쳐주는 방송 프로그램들의 영향이 크기도 해서다. 김 교수는 “물론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고 일부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진단과 치료의 영역과 훈련의 영역은 명확히 구분된다”면서 “반려동물에 문제가 있으면 먼저 병원에 가서 의사들에게 진단을 받는 게 가장 좋다”고 당부했다.
“사람도 몸이 아프면 짜증이 나고, 화도 내고 그러잖아요. 동물도 마찬가지예요. 개가 허리가 아픈데 자꾸 빗질해주고 산책시키면 예민해지고 공격적이 되겠지요. 행동의 문제는 교육이 안 돼서가 아니라 질병의 문제일 수 있거든요. 배변 문제라면 방광염일 수 있고, 공격성이라면 다른 곳이 아플 수도 있는 거고요. 병을 치료하면 행동 문제가 나아질 수 있어요. 몇 년씩 고생하다가 상황이 악화돼서 저에게 온 보호자들은 와서 눈물을 쏟으세요. 이제라도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돼서 다행이라고요. 그럼 저도 같이 울기도 하고 눈물바다가 되곤 해요.”
행동학에 매료돼 미국으로 유학
그는 “초년 수의사 때 돌보던 환자(반려동물)가 죽고 나서 내내 울다가 몇 번 기절해서 내과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제가 피를 못 보거든요. 피를 보는 수술을 못 해서 외과를 접었죠. 피 안 보는 내과에 갔는데 돌보던 환자들이 죽으면 제가 감당을 못하더라고요. 울다가 몇 번 쓰러져서 이 길은 아니다 싶었어요. 그러다 피부과로 옮겼는데, 벌레랑 냄새를 못 견디겠더라고요. 진료 중에 구역질이 나는데 어떡해요.(웃음) 그러다 행동학을 알게 됐는데 피도 안 보고, 환자가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벌레도 없고 냄새도 안 나서 이 길이다 싶었어요.”
행동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보람이 컸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보호자의 삶도 나아지는 게 보이니 덩달아 기뻤다. 국내에선 행동학 전문의 과정이 없어 2017년 미국 UC DAVIS에서 동물행동의학 전문의 과정에 도전했다. 전 세계에서 온 지원자 중 단 한 명을 뽑는 전문의 과정에 그가 합격했다. 과정에 합격했다고 모두 전문의가 되는 건 아니다. 전문의 시험을 보기까지 진료, 연구, 논문발표 등의 자격을 갖춰야 한다. 그는 2020년 미국 수의행동의학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레지던트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
“미국에선 개와 고양이뿐만 아니라 모든 특수 동물을 다 진료했어요. 외국은 반려동물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기도 하거든요. 국내에선 주로 개와 고양이죠. 어쩌다 마사에 가서 말을 보기도 해요. 제주도 이시돌 목장도 가끔 갑니다.”
반려동물 덕분에 더 친절해져
김 교수도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보호자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 에티켓을 더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이웃들에게 더 잘해야 하는 것 맞다”면서 “동물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사람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려동물 덕분에 제가 더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 됐다”고 웃음 지었다.
그는 동물병원 진료 비용이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세간의 오해에 대해선 “사람의 진료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이라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어디가 아프다며 아픈 곳을 정확히 얘기하지만, 동물은 말을 못하고 오로지 행동으로만 보여주기에 아픈 곳을 정확히 가려내기 위해선 사람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진료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그래도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고 비용을 지불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걸 느낀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람을 물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반려동물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는 “공격성과 관련해선 ‘나쁜 동물’이 아니라 ‘아픈 동물’로 봐줬으면 한다”면서 “행동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더 많아지고 동물들이 하루라도 빨리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전엔 사람들도 정신과에 가는 걸 꺼리고, 동네에서 그런 정신의학과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많이 대중화됐고요. 각 지역에 동물병원은 많지만 동물행동의학을 다루는 곳은 거의 없거든요. 행동의학 저변이 더욱 확대되기를 바랍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