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4. 결식아동
▲ 인보의집 원장 홍미라 수녀와 오운녕 수녀가 공원 앞에서 밥차 문을 열자 아이들이 밥을 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단 두 글자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흙밥’.
‘흙밥’은 저소득층을 뜻하는 ‘흙수저의 밥’이라는 말이다. 흙밥은 어느 연령층에나 존재한다. 하지만 청소년이, 특히 아동이 흙밥의 대상이 됐을 때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살 만한 사회’가 아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밥 굶는 아이들이 많다.
가난한 이들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가운데 계시도다’. 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3일)을 맞아 결식아동들을 만났다.
밥을 찾아 나서는 아이들
4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있는 상산어린이공원. 반짝 추위에 사람들은 옷깃을 꼭 여민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따금 공원을 가로질러 가는 사람만 있을 뿐 공원에 머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땅거미가 지자 공원은 어느새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모두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이었다. 인보의집(서울 용산구 후암동) 수녀들이 밥차 문을 열자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밥차로 몰려들었다.
인보의집에서 청소년을 위한 무료 식당을 운영 중인 인보성체수녀원 홍미라(루치아, 인보의집 원장) 수녀와 오윤녕(마리아) 수녀. 매주 금요일에는 상산어린이공원 앞에서 청소년을 위한 무료 밥차를 운영한다. 보통 오후 4시 30분이면 밥차 문을 열지만, 아이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는지라 준비가 되는 대로 아이들을 맞이한다. 이날 메뉴는 오므라이스와 카레라이스, 토스트, 그리고 우동 국물이었다. 간식으로 귤과 빵, 젤리도 준비했다. “올해 6월부터 시작했어요. 화요일은 신림동, 금요일은 수유동에 와요. 제때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아이들이 후암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홍 수녀가 한 아이에게 오므라이스를 건네며 말했다.
음식을 받은 아이들은 익숙한 듯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아이들, 혼자 앉아 조용히 먹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음식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음식량은 성인 남성이 먹기에도 적은 양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두 번에서 세 번까지 음식을 받아와 먹었다. 그중 한 아이가 밥을 먹지 않기에 왜 먹지 않는지 물었다. “점심때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배고픔을 참기 위해 한 끼에 많은 음식을 먹는다는 아이의 씩씩한 대답에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청년밥상문간.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문수 신부, 글라렛선교수도회)이 운영하는 이곳은 김치찌개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청년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한다. 꿈나무카드(서울시 아동급식카드)를 가진 아이들에게는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
5일 오전 11시. 영업이 시작되자마자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근에 주택가가 있고 청년밥상문간이 시장 골목에 있는 까닭에 이곳은 시장 상인과 인근 직장인, 대학생과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많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갔지만, 부모가 준 카드를 들고 와 결제를 하는 경우였다. 혹시나 결식아동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오후 2시 30분 점심 영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만, 아이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매니저 신서윤씨에 따르면 청년밥상문간을 찾는 결식아동은 인근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신씨는 “아이들이 주말보다는 평일 저녁에 주로 가게를 찾는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평일 저녁보다 많은 탓에 아이들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본 적 있어요. 항상 오는 친구인데 그날은 친구들끼리 왔더라고요. 그런데 먼저 와서는 쭈뼛거리다가 꿈나무카드를 보여주며 먼저 계산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 먼저 계산했어’라고 하는걸요.” 신씨는 “아이들이 꿈나무카드를 보여줄 때는 쭈뼛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며 “차라리 카드보다는 지원금을 주거나 식당에서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한 끼를 먹기에는 금액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금액을 좀 더 올려줬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여기서 배부르게 먹고 꿈나무카드를 쓸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서 또 밥을 먹는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래서 여기서 만큼은 배부르게 먹고 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인보의집 밥차에서 음식을 받은 한 아이가 공원 그네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
결식아동 급식지원 어떻게 이뤄지나
보건복지부 ‘2022년 결식아동 급식 업무 표준매뉴얼’을 보면 2021년 기준 급식 지원대상 아동 수는 30만 2231명이다. 2015년 42만 6594명에서 2016년 38만 5597명, 2017년 36만 4079명 등으로 해마다 줄고 있지만, 여전히 30만 명이 넘는 아이들은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급식 지원 대상은 만 18세 미만의 취학 또는 미취학 아동으로 △결식 우려가 있는 수급자, 차상위, 한부모 등의 아동 △결식이 발견 또는 우려되는 아동 △아동복지프로그램 이용 아동이다. 결식 우려는 보호자가 근로, 질병, 장애 등의 사유로 주식과 부식을 준비하기 어렵거나 준비하는 경우에도 아동 스스로 식사를 차려 먹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또한, 기준중위소득 52 이하인 가구의 아동이다.
급식 지원은 학기 중 중식은 학교급식을 통해 교육청이 지원하고 아침과 저녁, 토요일과 공휴일 및 방학 중 중식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급식비 지원 단가는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따라 한 끼에 7000원 이상 지원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지원 단가가 달라 적게는 한 끼에 6000원에서 많게는 9000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신청은 급식신청서와 대상자 선정을 위한 증빙자료를 첨부해 읍·면·동 주민센터로 하면 된다. 이후 읍·면·동 주민센터의 조사, 시·군·구 및 아동급식위원회 선정을 거쳐 급식 지원이 이뤄진다.
결식아동 지원책의 현주소
결식아동 지원책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해당 아동이 결식아동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인보의집 원장 홍미라 수녀는 결식아동이라는 낙인을 없애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배려받는다는 게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며 “인보의집에 와서 밥 먹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오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푸드 트럭의 이름을 ‘무료’에서 ‘프리’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다. 홍 수녀는 “아이들은 무료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불우한 이미지에 매우 예민하다”며 “친구들이랑 다 같이 왔는데, 마침 무리에 섞여 있는 결식아동이 배부르게 먹고 갈 수 있도록 대상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수녀는 가정 내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했다. 인보의집을 찾는 아이들은 한부모나 조손가정과 같은 차상위계층 자녀가 대부분이다. 홍 수녀는 “배를 굶주리고 싶어 하는 아이는 없다”며 “가정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결식아동이 발생하는 원인은 가정의 해체나 불화 등에 있다는 설명이다.
결식아동 급식지원카드의 낮은 지원 금액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홍 수녀는 “지난해 인보의집 문을 열었을 때 처음 방문했던 아이들은 한 명당 5~6인분을 먹었다”고 전했다. 성장기에다 평소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못한 탓이다. 그는 “성인 기준 한 끼를 사 먹기도 부족한 지원 금액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아지트) 소장 은성제 신부도 “주변에 넘쳐나는 게 식당인데, 정작 아이들은 그 음식을 사 먹을 돈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은 신부는 “질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신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식사 예절을 배우는 등 정서 함양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청소년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들을 잘 키워 건전하고 사람답게 사는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며 “해야 하니까 하는 정책이 아닌 아이들의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이문수 신부는 “결식아동 지원책이 점점 개선되고 있다고 느낀다”면서도 “좀 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섬세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본당이 특정 지역을 관할하는 만큼 본당에서 홀몸노인들을 지원하는 것처럼 결식아동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도 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결식아동 지원책, 실효성 떨어져
전문가들도 현재 결식아동 지원책이 아동 눈높이에 맞지 않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상균 교수는 “지원 금액의 문제 때문에 식당을 가지 못하고 결국은 편의점에 가서 한쪽으로 편중된 영양군이 있는 즉석 음식이나 음식재료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도 “지원 금액을 정해 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금액에 맞추려다 보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강득구(국회 교육위원회) 의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2년 1~6월 결식아동의 아동급식카드 사용처 현황’ 자료를 보면 1월부터 6월까지 전국에서 사용된 아동급식카드 건수는 모두 613만 9860건이다. 이 중 41.9에 해당하는 257만 2106건은 편의점에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대구 67, 인천 63.2, 서울 49.3 순으로 편의점 사용 비중이 높았다. 편의점 사용 비중이 낮은 전북과 충남의 경우는 각각 마트 사용 비중이 66.4로 나타나 많은 수의 결식아동이 음식점보다는 편의점이나 마트를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코로나19도 취약계층 아동의 급식 공백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수업으로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게 되자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성정현 교수는 “원래 한부모 가정이나 취약계층 가정 아이들의 돌봄 공백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등교를 하지 않으면서 더욱 커져 결식하는 아이들 또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2020년도 굿네이버스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사를 챙겨주지 않아 결식하는 아동·청소년’ 비중이 2018년 1.3에서 2020년 7.6로 늘었다. 2020년 보호자가 일하러 나간 사이 라면을 끓여 먹다 화재를 당한 ‘인천 라면 형제’ 사건은 코로나19로 인한 돌봄 공백과 결식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취약계층 아동들이 겪는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아동급식 지원 등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아동급식 지원 대상자인 취약계층 아동’은 2019년 49만 6877명에서 2020년 51만 6639명으로 만 명 넘게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아동급식을 지원받은 아이들’은 33만 14명에서 30만 8440명으로 2만 명가량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이가 어릴수록 급식지원율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2020년 13세에서 18세 취약계층 아동의 72.1가 급식 지원을 받았지만 7세에서 12세까지 아동은 60.9, 0세에서 6세까지 아동은 6.2에 불과했다. 현재는 정상적인 등교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또다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아이들의 결식을 막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식아동 눈높이에 맞는 지원책 필요
이상균 교수는 컨트롤타워로서 중앙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결식아동 급식지원이 지방자치단체 이양 사업이기 때문에 결국은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가 분담해서 이 비용을 결정하거나 충당해야 하는데 의도와 결과가 계속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어떤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또 다른 격차가 존재한다면 중앙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다”며 “중앙정부가 강력한 권고를 넘어서는 기준을 제시하고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자체의 아동 복지를 평가해 공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지역에 따른 차이로 다른 처우를 받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 친화적으로, 부담과 불편함 없이 지원할 수 있는 좀 더 섬세한 방법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했다.
성정현 교수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업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성 교수는 “중앙정부가 아동인권 측면에서 아동복지에 대한 기본 정책을 수립하면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돕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아이들이 권리를 정당하게 누려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해야 한다”고 했다.
정익중 교수는 결식아동 각자의 상황에 맞는 지원책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역설했다. 정 교수는 “밥을 먹기 위해 매번 이동해야만 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이들에 따라 음식을 제공하거나 직접 해먹을 수 있도록 음식 재료를 보내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급식 지원을 받기 위한 카드를 갖고 있다면 아이들에겐 낙인감이 생길 것”이라며 아동급식카드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정 교수는 “모든 것은 결정적 시기가 있는데 아이들이 성장기 때 결식을 하게 되면 성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각종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방임은 신체적 학대와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결식아동 지원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