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지현씨는 쉼 없는 도전의 고비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매 순간 기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류씨가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언론인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
내가 류지현(안나)씨를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그는 내가 사제가 되어 첫 보좌신부로 부임한 서울 수유동본당의 주일학교 학생이었다. 그의 언니들은 주일학교 교사 등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는데, 안나씨 세 자매는 본당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서 요즘으로 말하면 인싸(?)였다. 모두 예쁘고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하고, 가족 내 어른 중 훌륭한 신부님과 수도자가 많았다. 류지현 자매가 올해 서울에서 있었던 세계 시그니스 총회에서 대변인을 맡으면서 나와 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학생 시절의 웃는 모습이 그대로였다. 유쾌하고 명랑한 여학생에서 어느새 의젓하게 자기 일에 성공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안나씨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영어를 부전공으로 하는 등 외국어에 소질이 많았다. 그는 두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어려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많은 자격증을 취득한 재원이다. 그는 SBS 공채 1기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미국과 한국의 여러 방송사 기자와 앵커로 활동했다. 뉴욕 특파원으로 CNBC와 함께 당시에는 생소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국 미디어 처음으로 방송을 시작했고 세계의 경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대회 외신 대변인 등 다수의 국제행사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맹활약했다.
현재는 위비앙 YOU CC 대표로,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고, 국방홍보원의 정책홍보자문위원 등 여러 기관에 미디어와 홍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자문과 NGO 나마스떼 코리아의 이사장을 맡고 있고, 강의와 방송, 집필 등을 하면서 ‘안나의 힐링 독서’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그림2]]
Q. 어떻게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지요? A. 저는 유아세례를 받아서 ‘선택이 아니라 어찌 보면 운명’과 같은 일이었어요.(웃음) 할머니와 부모님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고, 큰아버지와 당숙, 고모 등 집안에 훌륭한 성직자와 수도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저도 평신도지만 나름대로 소명을 실천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학창 시절엔 별명이 ‘팔방미인’이었어요. 엄청 활동적이었고, 학업, 취미 활동과 틈틈이 삶을 즐기는 것까지 열심하고 진취적인 학생이었어요.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쳐 봉사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학급 대표도 자주 맡았고 수업 후 심리적 방황을 겪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도 하고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보충 수업을 해 주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 YMCA에서 처음 개최한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우승도 했어요. 학교 조회나 음악 경연대회마다 늘 지휘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가장 재밌는 기억은 중학교 시절 방과 후 매일 한두 시간씩 친구들과 자전거를 탔던 거예요. 대학 때는 ‘크고 넓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양한 탐구심이 더 많이 발동되었지요. 시간 부담이 큰 학교 방송과 더불어 학회 활동, 교외에서는 클래식 기타 연주단, 프랑스 문화원의 샹송과 시네마 클럽, 독서 토론 서클 등을 열심히 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성당에서는 꾸준히 피아노 반주 봉사를 했고요. 특히 대학 3학년 때는 MBC 라디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의 DJ 경연대회에 나가 수상도 하면서 청춘을 불태우며 신나게 열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
Q. 24시간도 모자를 만큼 열심히 사셨네요. 어떤 탈렌트를 주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나요?A. 생각해보면 저는 주님께서 ‘말씀’에 대한 특별한 소명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다양하게 해 온 일들을 생각해보니 큰 틀에서는 모두가 커뮤니케이션과 관계가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 앞에 설 기회도 많았고 여러 분야의 대변인이나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행복한 마음이 들거든요. ‘말은 곧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하는데, 그냥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움직일 수 있는 ‘설득’의 힘도 중요하잖아요. 설득력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성심성의껏 대하고 공감을 주어야 가능한데 무엇보다 진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만날 때 최대한 그러한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요.
Q. 이번에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의 대변인을 맡아서 큰 활약을 했는데요. A. 많이 부족한데 너무 고마운 일이에요. 제가 전에 했던 아나운서, 기자, 특파원, 커뮤니케이션, 국제 업무 등의 여러 경험 덕분에 미디어, 언론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브리핑과 기자회견, 국내외 외신 등 언론 관계나 글로벌 홍보와 협력 등의 경력으로 세계 가톨릭의 큰 대회의 대변인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영광이었죠. 세계 시그니스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어 너무 감사해요.
[[그림3]]
Q. 삶에서 시련의 시간을 겪었을 때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A.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원래는 SBS에서 휴직 후 2년 뒤 돌아올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의 일은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미지의 도전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늦깎이 유학생의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현지 방송에서 매일 뉴스 앵커를 맡아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두 아이의 육아까지 하느라 거의 잠을 못 잤어요. 뉴욕에서 생각지 못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어요. 그러다 9년 만에 귀국해서 경제 기자 겸 앵커로 다시 시작할 때나, 또다시 미국 특파원으로 뉴욕증권거래소가 있는 월가를 매일 치열하게 오가던 시간도 무척 힘들었어요. 매번 거친 벌판을 헤치고 걸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ABBA의 ‘I have a dream’ 노래처럼 희망과 믿음을 갖고 쉼 없는 도전의 고비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무사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도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믿을 분은 그분밖에 없으시니까요.(웃음)
류지현씨는 미디어와 국제기구를 통해서 한국을 알리고, 자신의 한계를 넘는 도전을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늘 어려운 사람, 소외된 곳을 향하고 있다. 여러 해 네팔과 히말라야 산간 지역을 돕는 일을 작은 NGO와 함께하고 있고, 몇 년 전에는 히말라야산맥의 안나푸르나 산 아래 산간마을을 도우러 다녔다. 수도자는 아니지만 ‘뼛속까지 독실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항상 몸에 밴 봉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요즘은 ‘목소리와 전달력, 거기에 신앙심으로 무장된 무기(?)’로 봉사할 수 있는 ‘매일 성경 읽어 주는 안나’로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한 일들은 모두 “맨 처음”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도전적이지만 늘 성공을 이룬 것은 ‘부르심’과 ‘소명 의식’으로 주님께서 도와주셨다고 굳게 믿는다. 앞으로 류지현씨가 어떤 도전에 임할지 더 궁금해진다. 그의 도전과 꿈이 이 세상을 더욱 밝게 하고, 많은 후배에게 선한 영향력과 지혜로운 길을 선사하기를 기도한다.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그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