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구약 성경 전권을 붓으로 필사한 이춘자씨가 세필을 쥐고 있다. |
“어떤 젊은 부부가 그러더라고요. ‘연세 드신 분도 이렇게 쓰는데, 그동안 성경을 등한시한 것 같다. 붓으로는 못 써도 날마다 쓰겠다’고요. 그럴 때 제 마음이 굉장히 흐뭇했습니다.”
구약과 신약성경을 모두 붓글씨로 필사한 82세 이춘자(구둘라, 월계동본당)씨가 환하게 웃는다. 2010년쯤 시작한 신약은 1년이 걸렸고, 구약은 양이 많아 꺼리다가 딸의 권유로 2019년부터 2년 8개월 동안 필사를 했다. 제본된 필사본은 모두 32권. 이씨는 필사를 모두 마치고 붓을 내려놓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눈물이 났어요.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리 건강한 몸을 주셔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면서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팔순이 지난 만큼 필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눈은 침침했고, 정자세를 유지하며 서예를 하다 보니 목과 팔목 통증이 이어졌다. 글씨를 쓰면서 책상에 대고 있는 팔꿈치에는 피딱지가 앉았다 벗겨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견딜만했다”고 웃어넘겼다. 더 큰 고통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이씨는 필사를 하기 전 허리 통증을 심하게 앓았다. 분량이 많은 구약 필사를 주저한 것도 이 이유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래, 다시 시작해보자’ 하고 마음먹을 때 기도했다. “마무리 지을 때까지만이라도 건강을 주세요.” 놀랍게도 필사를 하는 내내 이씨는 허리가 아파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필사를 마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씨의 정성이 담긴 필사본은 많은 이에게 신앙의 귀감이 됐다. 완성된 필사본을 들고 월계동본당을 찾았을 때 이를 본 사제는 전시를 권했고, 전시를 찾은 신자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이씨의 필사본이 전시된다고 하여 성당을 방문한 사위와 손녀는 그 자리에서 예비신자가 됐다. 이씨의 둘째 딸인 김영지(소피아, 월계동본당)씨는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신랑이 ‘성당을 다녀야겠다’고 말한 게 처음이었다”며 “성경을 쓰는 과정과 완성을 모두 지켜보고 나서 매우 큰 감동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딸이 할머니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마음을 드러냈다. 이씨는 “요즘 애들은 억지로 성당을 다니라고 하면 싫어한다”며 “그저 영적으로 ‘당장은 성당에 나가지 않더라도 외면하지 마시고 꼭 불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성가정을 이루는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한 자씩 마음을 다해 쓴 필사에도 할머니의 그러한 기도가 담겼다.
이씨가 꼽은 성경 필사의 매력은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구절이라도 꼭꼭 씹어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귀한 생명을 주신 덕분에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같은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도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다. 이씨는 “기도하고 바라면 이루어지더라”며 “건강을 유지하는 것과 자식들이 잘 자라 바르게 사는 것, 또 성경 필사를 완성하게 해주신 것 모두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상의 이유로 이제 성경 필사는 힘들겠지만, 죽을 때까지 굳건한 믿음 속에서 하느님 나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