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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번역한 신약성경 주석서 「SACRA PAGINA」 히브리서 편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는 조장윤 신부. |
사제로 산 지 30년쯤 되던 2005년 무렵, 대전교구 원로사목자 조장윤(베르나르도, 73) 신부는 회의에 빠졌다.
‘내가 설교하고 강론하는 게 하느님의 복음에 맞는 건가? 혹시 내 생각을 나누는 건 아닌가?’
그렇게 깊이 회의하던 중 조 신부는 「SACRA PAGINA」(싸크라 빠지나, ‘거룩한 페이지’라는 뜻의 라틴어)를 떠올렸다. 몇 해 전, 교구에서 안식년을 받아 1년간 미국 보스턴 예수회 신학대학원(Weston Jesuit School of Theology)에서 공부할 때 몇몇 교수들이 추천해 줬던 신약성경 해설서가 갑작스럽게 생각난 것. 해서 조 신부는 본당과 병원사목을 하면서도 밤만 되면 「SACRA PAGINA」를 원서로 읽기 시작했고, 2년 6개월 만에야 18권을 모두 읽을 수 있었다.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물론 다 이해하진 못했어요. 그렇지만 자신감이 생겼어요. 성경의 전체적 내용이나 배경, 전후 관계를 알게 되니까, 복음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알게 됐어요.”
조 신부는 「SACRA PAGINA」를 세 단어로 요약됐다. 복음을 전후 관계나 맥락에서 보고(contextuality), 복음서 안에서의 원문의 자체적 관련성을 파악하고(intratextuality), 텍스트가 되는 구약성경과 다른 복음서, 교부들 해석, 현대 성서학자들의 해설을 통해 복음의 관련성을 돌아보게(intertextuality) 되니 ‘눈이 밝아진’ 느낌이었다는 것. “복음을 듣고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당시 상황과 배경, 예수님 뜻, 사도들의 생각, 현대 주석들, 저자의 생각마저 망라해 보니 복음이 밝히 드러나 놀라웠다”고 조 신부는 설명했다.
그제야 번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조 신부는 2016년 은퇴에 1년 앞서 틈틈이 저녁 시간에, 은퇴 뒤엔 온종일 번역해 7년 만인 지난 7월 15일에 번역을 마무리했다.
“운동하거나 때로 식사 약속이 잡힐 때를 제외하고는 날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마치 전쟁하듯 번역했어요. 심지어는 술을 마셔도 소주 1병까지는 똑같이 일했지요. 설과 추석을 빼고는 안식일도 안 지키며 작업했는데, 그런데도 하루에 힘껏 해봐야 두세 쪽 번역이 고작이었어요. 권당 500∼600쪽, 분량이 많은 책은 1000쪽이 넘는 해설서도 있었지만, 그렇게 번역한 게 쌓여 한 권의 책이 번역됐고, 마침내 총 18권을 다 번역할 수 있었어요.”
조 신부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번역은 그야말로 간난신고였다. 번역 중 오른쪽 눈에 포도막염이 생겨 3차례나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홍채에 수술 자국이 남는 바람에 오른쪽 눈은 글자를 읽지 못하게 됐다. 다행히도, 하느님의 섭리였는지 눈은 더 나빠지지 않았고, 번역은 무사히 마쳤다.
그렇게 힘겹게 번역해 대전가톨릭대 출판부에서 펴낸 「SACRA PAGINA」에 대해 조 신부는 “예수회 다니엘 J. 해링턴 신부님이 총 편집자를 맡아 국제적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현대적 성경 연구 방법을 총동원해 신약성경 전체를 새롭게 연구하고 해석한 기념비적인 주석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주석서를 접한 사제나 수도자, 평신도들은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이에 대해 조 신부는 “저는 본당과 병원사목을 하면서 2년 반 동안 「SACRA PAGINA」를 원서로 다 읽었다”며 “어렵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일 뿐이고, ‘필요한 사람만 읽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를 겪으며 본당이 텅텅 비게 된 건 한국 교회에 바탕이 없다는 게 드러난 것”이라며 “그 바탕을 다시 찾는 방법이 바로 성경이고,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SACRA PAGINA」 같은 주석서가 도움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 신부는 이어 “나는 사제들에게 이 「SACRA PAGINA」를 소설 읽듯이 빨리 읽으라고 권하는데, 그건 성경의 전체적 흐름을 알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 때문”이라며 “그러고 나서 한 부분씩 필요한 부분을 다시 읽으면 신약의 세계라는 현장에 온 것처럼 느낄 수 있고 많은 묵상 소재를 받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요즘 들어서는 자신이 번역한 18권을 다시 읽어가며 내용을 숙지하고 오ㆍ탈자를 바로잡는다는 조 신부는 “다시 읽으니까, 더 좋고, 학자들이 온 힘을 기울여 쓴 책이라는 걸 새롭게 알았다”며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같은 영적 독서에 필요한 교재로 꼭 「SACRA PAGINA」를 추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문의 : 02-762-1194, 기쁜소식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