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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23)서울대교구 새남터 순교성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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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이하였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다가올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때이다. 우리 곁에 있는 성당이나 성지를 순례하며 자기 삶과 신앙을 돌아보면 좋을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새남터 순교성지를 순례하였다. 한양성 밖 남쪽 한강 변에 있는 새남터는 ‘노들’ 혹은 ‘사남기’(沙南基)로 불리던 곳으로 한강 변의 낮은 모래 언덕이 있는 곳임을 뜻한다. 조선 시대 초부터 군사들의 연무장(演武場)과 국사범과 중죄인의 처형장이었다. 새남터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철도 공작창 인근으로 현재 새남터성당 남쪽 150~200m 지점으로 여겨진다.

새남터 순교성지는 절두산 순교성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순교 사적지다. 두 곳 다 한강의 모래사장 근처에 있는데 절두산에서는 많은 평신도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였다. 새남터에서도 여러 성직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아 썼다. 우리나라 103위 순교 성인 가운데서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인이 11위이다.

한국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14명 가운데 11명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복자 주문모 신부(야고보, 1752~1801)가 순교하였고,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제2대 조선대목구장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Imbert, 1796~1839)와 성 모방 베드로 신부(Maubant, 1803~1839), 성 샤스탕 야고보 신부(Chastant, 1803~1839)가 순교하였다.

1846년 병오박해 때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안드레아, 1821~1846)와 ‘기해일기’를 작성한 성 현석문(가롤로, 1801~1839)이 순교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제4대 조선 교구장 성 베르뇌 시몬 주교(Berneux, 1814~1866)와 성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신부(Breteni?res, 1838~1866), 성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Beaulieu, 1840~1866), 성 도리 헨리코 신부(Dorie, 1839~1866), 프티니콜라 미카엘 신부(Petinicolas, 1828~1866), 푸르티에 가롤로 신부(Pourthi?, 1830~1866) 등 6명이 순교하였다. 이때 성 정의배(마르코, 1795~1866), 성 우세영(알렉시오, 1845~1866) 순교자도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이곳 성지에는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새남터 기념관이 있다.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드러낸 순교자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굳은 신앙을 본받아 살기를 바라며 2006년 9월 순교자성월에 개관하였다. 순교자 기념관이 지하에 있는 것은 박해의 암울한 시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념관 입구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복자 주문모 신부 동상이 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입국하여 복음을 전한 주문모 신부를 떠올리며 초창기 선교 사제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가질 수 있다.


기념관 안에는 한국교회 창설 시기부터 4대 박해사(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한국천주교회의 시복과 시성 역사, 교회의 다양한 유물과 자료, 순교자들 부조와 순교 도구, 성화와 사진 등이 있다. 기념관 안쪽의 유해실에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와 다른 지역에서 순교한 5위(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 성 황석두 루카,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이명서 베드로)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기념관 중앙 추모의 장에는 이곳 순교자 14인 얼굴을 묘사한 부조가 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사제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보면서 한국교회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했는지를 알 수 있다. 특히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은 서품받고 바로 우리나라에 와서 짧게 복음을 전하다가 대부분 20~40대에 순교하였으니 애통하면서도 죄송스러운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새남터 순교성지는 1950년 순교 사적지로 지정된 후, 1956년 순교자 현양비를 세웠다.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가 1957년부터 성지를 관리하면서 사목하고 있다. 한국 전통 양식의 새남터 순교 기념 성당(주보: 순교자의 모후)은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해인 1984년에 착공하여 1987년에 완공하였다. 제대 뒤의 오석으로 제작한 벽화(방오석 마르가리타, 1938~2018)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천상에 있는 우리나라 103위 성인들을 볼 수 있다. 이 성당은 2009년 ‘로마 성모 대성당과 특별한 영적 유대로 결합한 성당 및 순례지’로 선포되어 많은 사람이 순례한다.

새남터 순교성지 근처에는 서울역이 있어서 한강철교를 통해 수많은 기차가 다닌다. 기찻길 방음벽에는 대형 유리화 ‘김대건 신부의 축복’(조광호 신부, 2018년 제작)이 있는데 새남터에서 순교한 복자 주문모 신부와 성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2위 성인들 모습을 담았다. 가운데 있는 김대건 신부는 손을 들어 한국교회 신자들과 새남터 순교성지를 찾은 순례자들을 향해 축복해 주고 있다. 교황청은 2018년 ‘천주교 서울 순례길’을 공식 선포하며 새남터 순교성지를 일치의 길에 포함하였다.



오늘날 새남터 순교성지는 서울의 다른 곳처럼 아파트와 주택으로 둘러싸여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불과 150~200여 년 전 이곳에서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을 떠올리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한강 백사장에서 우리의 순교자와 선교 사제들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자유롭게 드러내며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신앙 선조들이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그토록 갈구하던 신앙 자유의 날을 누리며 살고 있다. 우리는 신앙 선조들에 믿음의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순교자의 땅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절감한다.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나오면 가까운 곳에 자동차 전용 도로가 있다. 한강 변의 북쪽에 있는 번화한 길이 강변북로이다. 그 길 가운데서 새남터 순교성지부터 절두산 순교성지에 이르는 길이 성 김대건 신부의 이름을 딴 대건로이다. 요즘은 이 이름을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그 길을 포함한 전체를 강변북로라 한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이 길을 오가며 대건로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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