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따끈하고 맛있는 빵 기부하며...내일 아침 일어날 희망 생겼어요

자선주일에 만난 사람 / 빵집 ‘까사드선주’ 신선주 사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 까사드선주 사장 신선주씨가 직접 만든 빵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다.
▲ 신선주씨가 ‘강북 평화의 집’으로 보낼 빵을 만들고 있다.


‘자선’이란 거창한 게 아닌 누구나 일상에서 가능한 일이다. 작은 용기만 있다면, 금액과 상관없이 자선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현실에 부닥쳐 우리는 그 간단한 사실을 잊고 산다. 서울 연희동에 10평짜리 빵집 ‘까사드선주’를 연 신선주(효주 아녜스, 38)씨도 그랬다. 가슴 한쪽에 늘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단 생각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취약계층에게 빵을 기부하는 자선을 시작한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너무 힘들어서’였다. 대림 제3주일이자 자선 주일을 맞아 ‘사랑을 반죽하는 제빵사’ 신선주씨를 만났다.



자선은 남이 아닌 내가 살기 위해 하는 것

“종일 손님이 겨우 4명인 날도 있었죠. 게다가 물가도 정말 무섭게 치솟더라고요. 프랑스와 캐나다 등에서 수입해온 고급 재료만 고집하는 제겐 큰 부담이었어요.”

주방 보조 없이 홀로 몸이 부서지게 일해도 남는 게 없는 냉정한 현실. 설상가상으로 오랜 세월 옭아매던 우울증이 도지면서 신씨에겐 심신이 모두 괴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오죽하면 잠자리에 들 때 ‘이대로 눈을 안 뜨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마음이 좋아질 방법을 찾았어요. 그러다 평소 기부하고 싶어했던 생각이 났어요.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조금은 나아질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부터 빵을 기부하게 됐어요. 남이 아닌 제가 살기 위해서요.”

신씨는 한 달에 한 번 서울대교구 삼양동선교본당 부설 ‘강북 평화의 집’에 빵을 기부한다. 강북 평화의집은 화요일마다 거동이 어려운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 가정에 반찬 나눔을 하는 곳이다. 신씨가 만든 빵도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별식으로 제공된다. 그는 “처음부터 무리하면 나눔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아 25개씩 기부하고 있다”며 “대신 다양한 빵 맛을 보실 수 있도록 품목을 매번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선물로 보낼 빵을 만들기 위해 신씨는 휴무일인 화요일 오전 6시 30분에 가게로 나온다. 찬 새벽 공기를 맞으면서도 그는 활짝 웃어 보였다. “선물인데 팔고 남은 걸 드리면 되나요. 갓 만든 따끈따끈한 빵을 드려야죠.”

빵집에 오자마자 하는 일은 전날 냉장고에 넣어 저온숙성한 밀가루 반죽 꺼내기. 바쁜 와중에 틈틈이 빚어둔 것들이다. 오늘 선물은 달지 않고 짭조름해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소금빵’이다. 신씨가 반죽 하나하나 정성 들여 조물조물 빚은 빵을 발효기에 넣는다.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니 곧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다. 그대로 오븐에 구워내면 마침내 먹음직스러운 빵 완성이다.

어느새 날이 밝아 햇빛이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약속시각인 11시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소중히 포장한 빵을 신씨가 스쿠터에 싣고 출발한다. 주말에도 종일 가게를 지키는 그에겐 북악터널을 지나 강북 평화의 집까지 달리는 그 짧은 시간이 삶의 낙이다. 은은히 풍겨오는 빵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빵 만들고 설거지하면 정말 온몸이 아프고 힘들어요. 어디 놀러 갈 체력도, 시간도 없죠. 그래서 이렇게나마 바람 쐬면 어찌나 행복한지요. 제 빵을 받은 분들이 맛있게 드실 걸 생각하면 ‘기운 내서 더 잘해봐야지!’라는 삶의 의욕도 생겨요.”


▲ 먹음직스럽게 잘 완성된 빵들. 홀몸노인들을 위한 선물로 ‘강북 평화의 집’에 보내진다.



마음 아픈 노인과 지하철 매점 떡 이야기


신씨는 “기부를 처음 결심했을 때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바로 지하철 승차장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떡을 먹는 노인들의 뒷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은퇴하시고 지하철역 매점에서 오래 일하셨는데,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매점에서 날마다 파는 떡이 있는데, 1팩에 1000원 하던 게 오후 3시가 되면 3팩에 1000원으로 바뀐대요. 그 순간 아침부터 의자에 앉아 오도카니 기다리던 어르신들이 몰려와 떡을 사가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물도 없이 1팩을 드신 뒤, 남은 떡을 들고 자리를 떠나신대요. 그게 첫 끼일 수도, 또 그 떡으로 며칠을 버티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어르신들이 또 1000원짜리 싸구려 봉지 사탕도 그렇게 많이 사가신대요. 근데 그거 정말 맛없고, 성분도 안 좋거든요. 나이 드실수록 소화 잘 되고 몸에 좋은 걸 드셔야 하는데….”

‘까사드선주’에서 파는 빵은 좋은 재료를 쓰는 데다 손이 많이 가는 까닭에 가격이 싸진 않다. 개당 보통 5000원 안팎으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노인들은 좀처럼 사 먹기 어려운 금액이다. 신선주씨는 “어르신들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제가 만든 맛있고 좋은 빵을 드시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아무리 나이가 드셨어도 맛있는 건 다 아세요. 우리 입맛에 맛있는 건 어르신들도 다 잘 드시거든요. 돌아가신 저희 할머니도 작은 과자 한 조각이라도 드리면 얼마나 좋아하며 아껴 드셨는지 몰라요.”

늘 고생 많은 사랑하는 손녀를 위해 기도하느라 손에서 묵주를 떼놓는 일이 없던 할머니.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도 닳고 닳은 묵주와 작게 한입 베어 문 과자였다. 신씨는 “그 기억을 결코 잊을 수 없다”며 “어르신들에게 드릴 빵을 만들 때마다 저희 할머니가 드신다고 생각하고 정성과 사랑을 담으려 노력한다”고 웃었다.

빵 나눔을 하면서 신씨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내가 가진 탈렌트로 더 어려운 이들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단 사실이 놀랍고 기뻤다. 동시에 손님들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남는 건 거의 없다시피 하는 수준이지만, 신씨에겐 전에 없던 희망이 생겨났다. ‘내일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다’던 그는 이제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잘할 수 있기를’ 꿈꾼다.

“매일 새벽 출근하기 전에 주님께 기도해요. 부정적인 생각 대신 좋은 생각만 하도록, 그래서 손님들에게 좋은 기분을 전해드려 그분들도 좋은 기억을 갖고 다시 오도록 해주시라고요. 대신 저도 주님과의 약속을 지켜야죠.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빵 선물’을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2-12-0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9

느헤 8장 10절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들 마십시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