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시작해 충북 제천, 진천을 거쳐 울산 울주까지. 2022년 6월 15일, 전국 30개 성지를 순례하는 특별한 여정이 시작됐다. ‘희망의 순례’에는 수리산성지, 배티성지, 배론성지 등이 포함됐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를 신자들이 동행하고자 나선 것이다. 신자들을 만나 기쁨을 나누고, 핍박받는 신자들을 보며 슬퍼하기도 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땅을 밟으며 신자들은 161년 전 세상을 떠난 최양업 신부와 만나고 있었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가기 위한 신자들의 노력은 각자의 자리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연구와 순례, 기도로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현양 운동에 동참한 신자들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신자들의 노력도 가경자 선포에 큰 힘이 됐다. 최양업 신부의 시복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교회는 보다 많은 교회 구성원들이 최양업 신부의 삶과 숭고한 신앙 정신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시복 추진의 목적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신앙 후손들이 최양업 신부의 모범을 본받아 거룩하고 복음적인 삶을 증언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청주교구는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전기 자료집을 준비하며 1996년 9월 20일, 배티성지에서 신앙대회를 열고 시복을 위한 기틀을 다졌다. 1999년 12월 3일 청주교구에 세워진 양업교회사연구소는 최양업 신부에 대한 연구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최양업 신부 탄생 180주년과 185주년을 맞아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뿐 아니라 2011년에는 최양업 신부 선종 150주년을 기념해 최양업 신부의 삶과 신앙을 담은 영상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현양 운동이 본격화된 1990년대 후반 이후로 시작된 도보 순례에도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청주교구는 2011년 ‘양업순례단’을 꾸려 순례와 공부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소장의 해설을 들으며 최양업 신부의 여정을 동행하는 신자들은 최양업 신부의 선교 열정과 정신을 현양하고 있다. 부산교구 울산대리구는 2013년 11월 대리구장과 함께 걷는 양업길을 열고 신자들의 순교신심을 고취시켰다.
원주교구 배론성지는 최양업 신부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지, 교우촌, 성당 30곳이 포함된 희망의 순례를 지난 6월 시작했다. 탄생지인 다락골성지에서 묘소가 있는 배론성지까지, 30곳의 장소를 걸으며 신자들은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 기도했다.
최양업 신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도 전국 곳곳에 세워졌다.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을 지도한 신학교가 있었던 배티성지는 2001년 옛 초가 성당 겸 사제관을 재현했다. 또한 2014년 4월에는 최양업 신부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한 박물관도 개관했다. 원주교구도 2004년 배론성지에 최양업 신부 생애를 조각으로 꾸민 공원을 세웠다. 최양업 신부의 탄생지인 다락골성지에는 2019년 10월 최양업 신부 기념관이 세워졌다.
■ 시복을 위한 불씨, 다시 피어오르다
증거자인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해서는 기적심사 통과가 필요하다. 이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김종강 시몬 주교)는 2015~2016년에 국내 기적 심사 재판을 진행해 그 결과를 교황청 시성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공식적인 기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증거 능력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이에 한국 주교단은 지난해 10월 14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을 위한 기적 심사를 새롭게 추진하며’라는 주제로 담화를 발표하고 “주교단은 이번 결과에 결코 실망하지 않고, 더욱 큰 정성과 열정으로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며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통해 기적 치유를 체험하셨거나 그러한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또는 소속 교구 사무처나 순교자현양위원회에 알려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최양업 신부 시복을 위한 의지를 재확인한 한국 주교단은 특히 신자들이 이 새로운 여정에 함께 해주길 청했다. 한마음으로 바치는 기도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주교단은 “무엇보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을 염원하는 시복 시성 기도문을 한마음으로 바치도록 하자”며 “최양업 신부님과 연관된 성지를 방문해 기도하는 것도 좋겠으며,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의 치유를 위해 최양업 신부님께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바쳐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