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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찰이 있는 공동체, 사회적인 우정터를 꿈꾸는 한평책빵 김수나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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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질병관리본부 경비실에서 탈바꿈한 한평책빵. |
서울 은평구 불광역에서 내려 건널목을 건너면 무언가 사연 있어 보이는 작은 가게가 서 있다. 가게 이름은 그 외형과 크기로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듯 한 자 한 자 힘주어 발음해야 하는 ‘한평책빵’.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곳, 그 초입에 위치한 경비실 자리가 책과 커피 향과 사람들의 웃음이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대림 제4주일, 하느님 사랑이 가득한 공간을 꿈꾸는 김수나(에우프라시아) 대표를 만나봤다.
한평책빵, 뭐하는 곳인가?
실제 크기는 7평(23㎡) 정도다. 서점이라면 책만 들어차도 비좁은 공간에 테이블이 놓여 있고, 책을 읽으며 커피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럼 북카페라고 생각하겠지만, 매장 이름은 ‘책방’이 아니라 ‘책빵’이다.
“처음 2년간은 책가게만 했어요. 그런데 찾아오는 분들이 책도 보고 음료도 마시고 모임도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월 임대료가 150만 원 정도라 저도 벅차던 시기라 집에서 커피 머신을 가져왔죠. 빵도 팔고.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책방, 누군가에게는 카페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마음에는 늘 책이 중심이에요. 그래서 무엇을 하든 ‘책방’이라고 꼭 짚고 가요.”(웃음)
김 대표가 2018년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는 초라하게 비어 있는 공간이었다. 서울혁신파크 활성화를 위해 임대료를 받지 않았기에 늘 꿈꿔왔던 책방을 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꿈의 실현이 생계를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특히 무료이던 시절까지 소급 적용해 임대료를 내게 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입주 단체 중 세 곳이 한평책빵과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모두 나가고 김 대표만 남았단다.
“2년간 애를 쓴 게 아까워서 문을 못 닫겠더라고요. 시작할 때 응원을 많이 받았는데, 저는 오히려 책방 운영하는 걸 특별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다 똑같은 자영업자이고 그저 취향의 전개인데 다른 업에 비해 우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독립 서점에 대한 소외도 있고 어려움이 많아서 요즘은 여러 지원책도 알아보고,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실제로 이 작은 공간은 다채롭게 변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담고 있다. 일단 ‘OOO의 한평책방’이 되어 누구나 일정 기간 자신의 추천도서를 중심으로 책방을 운영할 수 있다. 최근에도 고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이자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를 쓴 김혜영(사비나) 작가가 책방지기로 독자들을 만났다. 당연히 북 콘서트도 열린다. 10여 곳의 공장에서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로 겪은 가혹한 에피소드 ‘쇳밥일지’를 펴낸 천현우 작가의 강연회도 있었다. 그뿐인가. 사진이나 공예 전시가 열리기도 하고, 꽃꽂이 클래스가 진행되기도 한다.
김수나 대표, 뭐하던 사람인가?
한평책빵이 문을 열던 2018년이면 이미 동네 책방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던 시기다. 그녀는 무엇을 하던 사람이기에 하필 책방을 열었을까?
“책과 자연, 신앙이 어린 시절 저에게 힘을 줬기 때문이에요. 제2의 인생은 그 세 가지를 중심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에 마흔 살에 교리신학원에 입학했어요. 김민수 신부님이 불광동본당에 계실 때 아이들 독서교육 하러 다니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은 거죠.”
그전에는 다양한 일을 했다. 상고를 졸업한 뒤 바로 취업했고, 이후 의류, 베이커리 등 자영업을 경험했다. 생명보험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수도원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고, 전진상에 1년간 입회하기도 했다. 그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2013년 3월 13일,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그날, 김 대표는 정말로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다음해 교리신학원에 입학한 것이다.
“솔직히 지금은 그때의 충만함은 사라졌어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아등바등하게 되고, 경제적인 자유로움이 없으니까 너그러움도 사라지더라고요. 예전에 가톨릭평화신문은 탐독했던지라 인터뷰 섭외 전화가 왔을 때 회심을 위해 감사한 마음으로 응했어요.”(웃음)
하지만 한참 대화를 나눴는데도 그녀에게 왜 책과 자연, 신앙이 중요한지 와닿지 않았다. 책방을 열었다고 저절로 책이 팔리는 것이 아니듯, 인터뷰를 한다고 쉽게 글감이 잡히지는 않는 법. 시간을 들여 조심스레 계속 물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독서로 얻은 섬세한 감성 덕분인지 그녀는 기자의 의도를 파악했고, 마음의 결심을 한 듯 빗장을 풀었다.
어린 시절 힘이 된 책과 자연, 신앙
“책 제목은 모르겠는데, 어릴 때 할머니와 폐차에서 사는 소녀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갈아입을 옷을 살 돈이 없어서 소녀가 옷을 입은 채 세탁되죠. 삽화가 있었는데, 빨랫줄에 걸려 바람에 나부끼는 소녀가 웃고 있어요. 가난하고 못 먹어도 웃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죠. 저도 보육원에서 자랐거든요. 그때 저를 지켜준 게 책과 자연, 그리고 신앙이었어요.”
그녀가 어릴 때만 해도 지금 같은 도서관 문화가 없었다. 책이라고는 학급문고와 친구들이 빌려주는 것이 다였고, 그 책은 다른 세상을 보는 통로가 됐다. 사계절 늘 푸른 소나무와 동백나무도 좋은 친구였다. 무엇보다 고등학생 때 보육원 운영자가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로 바뀌면서 그녀의 삶도 달라졌다.
“그때 수녀님들로부터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받아봤어요. 성당에서 봉사활동 오시는 분들에게서도 사랑을 느꼈고요. 방황하느라 인근 성당을 서성일 때면 그곳 수녀님이 데려다 오르간도 알려 주시고 꽃꽂이도 가르쳐주셨어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많이 받았죠.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까요?” (웃음)
불우한 어린 시절 ‘신이 어디 있느냐’며 반감을 가질 만도 한데 그녀는 주위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덕분에 그 사랑은 그녀가 성인이 되어 가는 과정에도 시의적절하게 더해져 지금의 한평책빵 김수나 대표를 만들었다.
진정한 공동체를 꿈꾸며
한평책빵은 지난해 12월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책방지기로 참여한 이들, 강의를 했던 이들과 꿈을 실현하고 우정을 나누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는 혼자가 좋았어요. 사람으로부터 상처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공동체’의 개념을 심어준 분이 최대환 신부님이에요. 신학교 철학 수업에서 ‘개인의 행복보다 공동체에서 얻는 행복이 크다’고 알려주셨죠. 저 역시 ‘사회적 우정터’를 지향합니다. 어쩌다 보니 운영진이 모두 가톨릭 신자지만, 일부러 신앙은 살짝 감추고 있어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물론 하느님의 사랑은 연결돼야죠.”
김 대표는 열심히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관련 교육도 받고 여기저기 문의도 한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단순한 커뮤니티로 생각하기 쉽지만, 누구라도 참여해서 자신의 꿈을 펼치되 수익도 얻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음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한평책빵에 오면 ‘아, 나도 이런 카페하고 싶은데, 이런 책방 하고 싶었는데’라는 말을 많이 해요. 이 두 가지 꿈만 이뤄도 어딘가요. 다들 먹고사는 생계형 삶만 살아가는데,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터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생산자 조합과 함께 후원자 조합도 생각 중이에요. 후원자 조합원이라도 무언가에 참여할 수 있고, 생산자 조합원이더라도 이 일에만 매달리지 않도록요.”
많은 것이 어우러지는 한평책빵은 어릴 적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없었던 그녀가 오랫동안 갈망했던 다른 빛깔의 튼튼한 울타리인지도 모르겠다.
“맞아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소속감을 원하잖아요. 종교와 상관없는 곳이지만, 무관하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은 그 마음이 많이 흐트러졌지만 근본적으로 성찰이 있는 교회의 공동체를 열망했으니까요. 함께 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인 취향도 존중하고 함께하는 취향도 키워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서 내년 대림 때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사회적 공동체, 사회적 우정터가 되길 소망합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대림 시기에 만난 사람 / ‘한평책빵’ 김수나 대표